깨달음에 관심있는 분들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입니다. 무심선원에서 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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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깨닫고 싶으면 그저 죽어라고 김태완선생님 법문을 들으십시요. 유튜브에 검색만 해도 꽤 많은 법문 동영상이 뜹니다. 들어보시고 별로 와닿지 않고 믿음이 안가면 믿음이 더 가는 다른 선지식을 찾아야 합니다. 믿음없이 하는 공부는 아상만 키워주니까요. 공연히 시간만 낭비하게 됩니다. 근데, 법문을 들어봤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웬지 믿음이 가고 호감이 느껴진다면 여기에서 끝을 보세요. 일단 발심을 하셨다면 그 다음에 요구되는 덕목은 인내와 끈기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꼭 필요해요. 가랑비에 옷젓는다고 옷이 젖으려면 시간이 지나야 하니까요.

법문이란 법을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잠든 공부인을 깨우는 작업입니다. 결국 깨달음은 선지식에게서 얻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깨달음을 아주 거창하고 대단한 것으로 상상하시면 안됩니다.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단지 스스로의 마음에서 분별망상하는 습에서 한번 놓여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아무것도 아닌 작은 체험하나로 그 사람의 내면은 완전히 바뀝니다. 아니 바뀌어갑니다. 그래서 그 계합의 체험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 한번의 계기가 없으면 아무리 그럴 듯한 말을 하고 법에 관한 상당한 지식이 있다해도 그저 알음알이일 뿐입니다. 마치 태양빛 아래에서 촛불을 들고있는 것과 똑같아요. 자기 내면이 밝아져서 스스로 만족스러워야지, 겉으로만 번지르르 하면 뭐합니까? 
꼭 바른법에 들어와야 합니다. 비로소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이지요.
2016/11/28 20:13 2016/11/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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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공부의 핵심은 자기 내면에서 집착을 하느냐 안하느냐, 그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내가 의지적으로 집착을 한다 안한다 그 문제는 아니구여, 저절로 자기 내면에서 집착이 일어나느냐, 완전히 끊어져서 항상 불이가 유지되느냐 그 문제이지요.

마음이 없다라는 표현도 사실 집착의 문제로 귀결이 됩니다.

보통 어떤 경계가 일어날 때 그 경계에 끄달리는 지점은 바로 집착의 지점이거든요,

끄달린다함은 집착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아직 나라는 생각이 남아있어 그것과 관련하여 경계에 매이게 되는 것이지요.

색이 바로 공이라 했는데,

이 말 역시 색이 있는데 거기에 전혀 끄달려가지 않고 집착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색을 파헤쳐봤더니 그 속성은 텅텅 빈 허공이더라, 이런 말이 아니죠.

색은 그대로 공이어서 따로 없앨 색은 없습니다.

 

무아란, 내면에서 마음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2016/11/25 14:18 2016/11/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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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는 마음의 공부이기에 몸으로 하는 수련, 수행 등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직 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가 이미 법자체이면서도 깜깜한 망상속에 빠져있습니다. 망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망상이 '나'라는 망상입니다. 우리는 모두 몸과 마음을 가진 한 개체적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습니다. 몸을 더욱 건강하게 하고 마음을 더 힘들지 않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 우리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목적일 겁니다.

그런데 불법공부를 하다보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가르침이 뭐냐하면 '무아'입니다. 즉, 내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오해해 무아지경, 어떤 초월적 삼매속에서 자신을 잊는 상태가 무아인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전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무아란 생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어떤 초월적 상태가 아닙니다.  사실은 우리의 존재의 본래모습이 바로 그것이에요. 무아입니다. 나라고 할 것이 없어요.

분명 눈앞에 온갖게 다 보이는데, 그것을 보는 내가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저 사물이 보일 뿐, 그것을 보는 주체라고 생각되는 '나'라는 존재는 깊이 탐색해보면 결국 허구의 망상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주체가 대상을 바라보는 식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사람을 일러 중생이라고 합니다. 중생은 항상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며 세상을 바라봅니다. 삶과 죽음, 옳음과 그름, 선과 악, 하늘과 땅, 천국과 지옥, 나와 너, 불행과 행복 등등.

그런데 불법공부를 하여 실상을 보게 되면, 모든 이분법은 그저 망상이요 경계이며 하나의 현상으로서 영속하지 못하고 생겨났다 사라졌다 합니다. 보는자와 보이는 대상이 따로 있는게 아닙니다. 마치 거울에 어떤 영상이 비춰졌을 때 영상은 아무리 다양하게 변하더라도 거울은 언제나 늘 하나이듯이, 우리의 존재의 실상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하여 비로소 번뇌망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본래 오염될 내가 없어요. 그저 경계가 흘러갈 뿐인데, 그 흘러가는 경계 하나하나위에 바로 진정한 내 존재가 오롯하게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2016/11/21 16:07 2016/11/2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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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기 위해서 어떤 수행등의 조작을 하면 안됩니다. 그 시간만큼 공부가 늦어지게 돼요. 수행을 하여 몸이나 마음상태가 많이 좋아질 수도 있고,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수행의 행위는 나쁜 것은 아니지요.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수행의 결과로 깨닫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본래가 불성이라고 하잖아요. 단지 그것을 체득을 못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문득 계합하여 그것을 실감하면 되는 것이지요. 갈고 닦아야 할 무엇은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이 되면 초심자들의 경우 머리가 아득해질 겁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사실 우리가 노력해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노력을 안하면 그냥 중생 그대로이구여. 노력은 하되 올바른 방법으로 노력을 해야합니다.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선공부에게 참 잘 적용이 되는 말이에요. 
먼저 눈밝은 선지식의 가르침을 들어야 합니다. 즉, 설법을 꾸준히 듣는 것, 이것이 공부방법의 전부에요. 설법은 법을 보여주는 직지인심의 가르침일 뿐, 어떤 내용을 알려주는 강의가 아닙니다. 

중생병은 망상병입니다.
스스로가 법 자체이면서도 오랫동안 망상속에서 살아왔으므로 법을 볼 줄 모릅니다. 이를 일러 자승자박, 무승자박이라고 하지요. 생각의 노예가 되어 생각의 주인인 법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어요. 설법은 자승자박, 무승자박의 묶인 끈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물론 저절로 그리되는 것이지 공부인이 스스로 묶인 것을 푸는 것은 아니에요. 자기 스스로는 법에 관한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며 해서도 안됩니다. 공부는 항상 무위로 이루어져야 진짜입니다. 

공부인의 마음가짐은 반드시 부처님 법을 깨닫겠다는 굳건한 마음을 먹고 아직 공부에 관한한 아무것도 아는게 없다고 하는 하심의 마음, 그리고 선지식의 설법을 꾸준히 듣겠다는 인내심, 그리고 진실됨과 법을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이런 것들 이어야 해요.
그게 진인사 대천명에서 사람이 할 수있는 전부이자 최선입니다. 그 이상을 하겠다고 달려들면 바로 유위행에 떨어져 공부를 망치며 역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2016/11/20 07:58 2016/11/20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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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깨닫기 위해서는 수행등의 어떤 행위를 해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수행을 하여 마음을 갈고 닦게 되면 그 결과로 깨달음이 온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한번 깨닫게 되면 그것이 마음공부의 끝인 것으로 알게됩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것과 오히려 반대입니다.


실제로는 수행등의 행위는 유위행으로 참된 공부와는 아무 상관도 없으며 자칫 어떤 경계를 체험해놓고는 그것을 법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게 됩니다. 바른 공부는 언하에 대오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즉, 선지식의 설법을 듣거나 우연히 어떤 계기가 되어 문득 분별에서 놓여지고 법에 계합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야 진짜 견성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견성체험을 하게 되면 그것이 공부의 끝이 아니라 사실은 비로소 공부의 시작이 되는 겁니다. 한번 불성을 봐도 오랜 습을 조복시키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더 공부를 해야합니다. 그러면서 점점더 법의 안목은 밝아지고 세밀해지고 유연해지게 됩니다. 

깨달음은 어떤 특별한 상태가 아닙니다.
단지 우리 모든 사람들의 존재의 본래모습인 것이지요. 그러니 갈고 닦아서 얻을 그 무언가가 아닌 것입니다. 금강경에도 무소득이라고 하듯이,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참으로 중요한데,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바로 얻은 바가 있는가 아닌가..하는 그 지점이지요.

평상심이 도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우리의 평상심의 실상이 바로 도입니다.
마조스님은 마음이 부처라고도 했지요.;
하지만, 이는 그렇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스스로의 계합의 체험을 통해서 체득되어야 하는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6/11/20 07:36 2016/11/20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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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도대체 깨달음 공부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전 첨에 마음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바로 서점에 가서 마음공부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대부분 명상이나 좌선, 위빠사나, 선수행, 쿤달리니, 기수련 등 수행에 관련된 책들이었습니다.
수많은 공부관련 수련원 등도 단계별로 깨달음 공부여정을 정해놓고 한단계 한단계 나아가는 식으로 되어있더군요.

당연히 깨달음 공부는 그렇게 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었죠.
앉아서 호흡에 의식을 집중하던가, 들이쉬고 내쉴때 호흡을 헤아리던가...혹은 최면요법, 전생체험...
유체이탈....
30대 초반에는 이런 수행들을 좀 해봤는데 자꾸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몸에서 벗어나서 우주로 솟구치던가, 이상한 별세계에 가서 환상체험을 한다던가...

그러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런 것 다 포기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자 그런 현상들은 더 이상 경험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미친짓이었습니다.
유체이탈 비슷한 환상체험은 정말이지 경이로웠고 대단해보였어요.

아직도 초심자들 중에는 이런 체험속에서 허우적 대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 그러지 마시라고 이런 글을 올립니다.
깨달음은 그런 것하고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런 이상한 체험들은 스스로가 만든 망상병의 한 증상일 뿐입니다.
거기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되면 정말이지 헤어나오기도 어렵게 돼요.
마음공부 잘 못하면 정신병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그런 환자들 더러 봤어요.

금강경에도 나와있잖아요.
불법은 뭔가를 얻거나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 스스로의 본래면목을 깨닫는 것이에요.
뭐 이상한 현상을 체험하고 그런게 아니란 말이죠.
문득, 자기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되면, 
비로소 불법이란게 이런거구나..라고 확연히 알게 됩니다.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스스로의 내면에서 밝게 빛나게 되니까요...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치유경험, 전생, 최면, 초능력 이런 기이한 현상에는 결코 관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런 것들은 깨달음 공부 주변에 넘실대는 복병이자 질병입니다.
바른 법을 깨달아야만 완전한 해탈자재가 이루어집니다.

2016/11/19 11:41 2016/11/1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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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의 깨달음이 반드시 있다라는 믿음이 왜 중요하냐하면, 초심자의 경우 사실 그런게 진짜 있나 하면서 반신반의하게 됩니다. 2500여년전의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어찌 믿을 수 있는가?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그런게 있다고 착각하면서 여지껏 살아온 것은 아닌가...이런 생각도 가능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공부에의 힘이 떨어져요.
공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으면 공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과거 역사를 보면 석가모니 이후 수많은 조사 선사들이 대를 잇고 불법의 현전함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서 불법이란게 이렇게 있는 거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이상 더 정확하고 분명한 증거가 무엇이겠습니까? 다만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고 상상하는 깨달음과는 많이 달라요. 어찌보면 너무 평범하고 맛이 없어서 첨엔 많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깨달음에 대해서 어떤 생각들을 갖느냐 하면, 평범한 사람이 수행등을 통해서 깨닫게 되면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와 소통하고 생사를 초월하며 온갖 초자연적인 힘을 얻게 되어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없는 새로운 존재계로 진입하는 등등, 참으로 비현실적인 생각들을 많이 가지고 있게됩니다.

하지만, 이는 그저 깨달음에 대한 편견이요 고정관념이며 망상일 뿐이지요. 그런게 깨달음이라면 불교라는게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깨달음이란 우리 스스로의 존재의 실상을 밝히는 일일 뿐입니다. 즉,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는 과정이에요. 물론 나는 누구다..이렇게 답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여간 깨달음에 올바로 진입하려면 많은 장애물들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 시간이 좀 걸리게 됩니다. 나중에 보면 이런 말들도 사실 맞는 말은 아닙니다만 어쩔 수 없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다시 한번 강조드리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은 법과 똑같은 것을 나도 깨닫겠다...라고 굳게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무상정등각을 이루신 부처님의 법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법은 모두에게 동일한 법입니다.
하나의 법이지요.
그 하나를 우리 스스로의 내면에서 밝히고 드러내어 활짝 꽃피우는 과정이 바로 마음공부의 길인 것입니다.
2016/11/19 09:42 2016/11/1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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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의 경우 막연하게나마 마음공부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저 역시 젊은 시절부터 깨달음에 목말라했었습니다.
그저 가능성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삶의 유일한 희망이요 탈출구가 되지 않겠나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어느덧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죠.

그런데 지금 이렇게 생각해보니 마음공부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다양한 이론과 방법들이 있기에, 그 중에서 뭐가 바른 길이고 뭐가 잘못된 길인지, 뭐부터 시작해야는지, 공부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초심자로서는 참으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미 공부가 많이 되신 분들의 입장에서는 저마다 '나의 방법이 옳소..' 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아무런 경험도 없는 초심자의 입장에서는 그 역시도 믿기가 쉽지 않으며 의심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게 마음공부의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일 수 있겠습니다.

객관적인 학문의 경우 이미 입증된 이론 들이 있기에, 누구나 그것만 열심히 공부하면 큰 어려움없이 학문의 길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하느냐 안하느냐, 혹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이런 차이 밖에 없죠.
그러나 마음공부의 경우는 그와 달라서 이런게 진리다..라고 제시할 수 있는게 없어요.
수많은 경전들이 있지만, 그 역시도 진실을 직접 말해준다기보다는 진실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합니다.

아주 어려운 상황이죠.
그래도 잘 생각해보면 나름 좀 더 나은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방법은 있어보입니다.

먼저 2500여년전에 인도의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오셔서 스스로 깨달아 이후 수많은 가르침을 펼치셨음을 믿어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즉, 불법의 깨달음이라는 것이 반드시 있는 거구나..라는 것을 확고히 믿어야 한다는 거죠.
뭐, 불법을 믿지 못했다면 마음공부라는 것을 생각도 안했을 테니까,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하더라도 이 믿음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진리는 반드시 있는 거구나..이런 믿음이요.

근데 진리가 있다..라고 제가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보통 어떤 사물이 있다..라는 식으로 있는 건 아닙니다.

그게 참 묘한 겁니다.
여하간, 처음엔 부처님 법이 반드시 있는 거구나..라고 믿는 것부터 공부는 시작이 됩니다.

2016/11/18 19:30 2016/11/1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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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내에 아직도 빨간 단풍잎이 그대로 남아있네요.
무척 선명해보여서 폰카에 담아봤습니다.
2016/11/18 17:04 2016/11/1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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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마음공부
도와 인격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결로부터 말하자면,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물론 좋은 인격을 갖추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그건 뭐 너무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도를 깨닫는데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즉, 인격과 깨달음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에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깨닫고 나면 훌륭한 인격이 갖추어지겠지..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이유에서 입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 또한 상이 되거든요.
그러한 상에 매이면 더욱 법에 계합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니까, 그런 쪽으로는 관심을 갖지 마시고 오로지 법에 계합하고 싶다...는 간절함에만 온 마음이 모아져야 해요.

인격이란 사실 육체적 기질과 주변적 환경이 만나서 만들어진 합작품이에요.
기질은 육체적인 거라 어쩔 수 없는 거지만, 
환경적인 부분은 얼마든지 교정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인격, 즉 성격은 바뀔 수가 있어요.

견성체험을 하게되면 더 이상의 불만족을 거의 못느끼기에
심리적 환경요인이 상당 부분 변하게 되며 이로써 미성숙한 인격도 보다 성숙해질 수는 있어요.
뭔가 불만족이 있기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니 그게 인격으로 굳어진거니까요.
사람이 더욱 부드러워지고, 맺힌데가 없게 되며 마음은 한없이 평화롭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저 공부이후에 느끼는 효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그런게 법인가보다..하면 안됩니다.

그러니 깨달음에 대한 선입견을 모두 버리시고,
오직 스스로 깨달아 자기의 마음안에서 깨달음을 증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모든게 다 밝혀져요.
하지만 그렇다해도, 겉으로는 그저 평범한 한 개인의 삶을 계속 살아갈 뿐입니다.
능력이 되시는 분들은 법을 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자유인으로 살다가는거지요.

합장.
 
2016/11/11 23:03 2016/11/11 2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