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선원에서 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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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있어 마음공부에 입문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마음공부를 하면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게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문이 사라져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깨달음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일어났다면, 그 해답은 깨달음은 이러이러한 거야, 라고 대답이 나와야 하거든요.
세속법에서는 그게 맞아요.
그래야 의문이 해소가 되고 비로소 만족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음공부에 있어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주어지는게 아니라, 그 의문이 사라지는거에요.
왜 그러냐하면, 그 의문의 뿌리인 분별망상에서 벗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진리에 눈이 떠지므로, 어떠한 의문도 안만들어집니다.

오늘 어떤 분이 제게 전화를 하여 다소 화가 나신 듯한, 혹은 절망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도대체 깨달음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더군요.
전 좀 난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깨달음이 훤히 드러나있고, 그 분도 지금 그 자리에서 질문을 하시고 계신거거든요.
'바로 그거다.' 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고 '김태완선생님 법문을 최소한 6개월 정도 들어보시라'고 권해드렸습니다.
공부에 대한 열의가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조금만 안내를 받으시면 금방 터져버릴 것 같은..그런 상태 같아요.

깨달음은 쉽지만 어렵습니다.
끈기와 굳건한 발심으로 한 곳만 파십시요.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서 좋은 소식이 올 겁니다.
그리곤 빙그레 웃으실 거에요.
이런게 있었구나..별 것 아니네, 그런데 좋네..라고 하실 겁니다.

합장.
2016/12/29 17:30 2016/12/2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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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에서는 내 몸과 내 마음이 있고, 내 몸과 내 마음을 가진 나라는 사람이 물질로 된 세계속에서 산다고 이해한다. 이것은 중생의 망상이다.

깨닫게 되면, 나라는 게 없다.

나라는 게 망상이다. 내 마음이라는 것도 없고, 마음이 있다면 이 세계자체가 마음이다.

깨달았느냐 아니냐의 경계선은 이렇게도 말할 수가 있다.

이 세계가 곧 마음이냐, 아니면 내 마음이라는게 따로 있느냐,

그게 깨달아서 법계에 통달했느냐 아니냐의 차이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부 중생이다.


몸과 마음이라는 그 개념이 사라지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아니고 그냥 한개의 세계인데 그 한개의 세계가 차별이 없을 때 그것을 마음이라고 하고 차별이 있을 때 그것을 만법이라고 한다.

마음은 만법이 아니라 일심법이다.

 

- 김태완선생님 화엄일승법계도 법문동영상 중에서 -

2016/12/27 22:54 2016/12/2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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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4 09:36 2016/12/2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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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밤에 한시간 정도 산책을 합니다.

산책하면서 김태완선생님 mp3 법문을 듣는데, 법문 하나 들으면 딱 시간이 맞아요.

선생님 법문은 여전히 계속 듣고 있으며 그것도 열심히 들어요.

시간이 가면서 또다른 의미로 선생님 법문을 통하여 공부에 많은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너무 쉽게 하는 공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공부한다고 뭐 애를 쓰거나 그런건 전혀 없어요.

그냥 편안하게 법문을 듣는게 제 공부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매일매일의 일상생활을 통하여 공부가 점검되고 있구여..

경계를 대하여 끄달림이 있는가 없는가, 있다면 얼마나 많이 끄달리는가...

이런 것들을 보면 아, 아직 내 공부가 부족하구나..혹은 그래도 전보다 많이 공부의 힘이 강화되었구나...등등을 알게 됩니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이 공부에 점점 매료가 됩니다.

말로는 공부가 쉽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공부의 깊이라는게 이게 끝이 없어보입니다.

공부하다가 문득 앞뒤가 끊어지는 체험을 하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세수하다가 코만지기처럼 쉽죠.

하지만 공부 그 자체가 되어 이 우주를 내 수족처럼 느낄 수 있게 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요.

 

항상 겸손하게, 늘 배운다는 마음으로 공부에 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삶은 고라고만 알고 살아오다가 불법과 인연이 되어 이렇게 안심입명처를 알게된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합장.

2016/12/20 20:57 2016/12/2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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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부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이 무엇인지만 알면 되겠네요.
마음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보통 육체와 대비되어 마음..합니다.
이때의 마음이란 정신현상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지지요.
내 마음, 네 마음..
즉, 내 생각, 감정, 느낌 등등, 네 생각, 감정, 느낌 등등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알고있는 마음은 사실은 마음위에 나타나는 정신적인 경계일 뿐입니다.
경계는 일어났다 사라지는 허망한 것이지요.
'마음이 부처'라고 할 때의 마음은 그런 정신적인 경계를 말함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무얼까요?
마음은 무엇이라고 정의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언가가 정의가 되려면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마음은 본래 허공처럼 텅비어서 모습도 없고 본래 한 물건도 없거든요.
모습으로는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 마음바탕 위에서 온갖 우주 삼라만상이 생멸변화를 하는 겁니다.

마음은 알아차릴 수는 없으나 깨달을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본래 이 마음자체이니까요.
내가 내 마음을 깨닫는 건데,
이때 '나'라고 표현은 했지만, 이 육신이 나는 아닙니다.
내가 곧 법이에요.
법이 법을 깨닫는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군요.
법은 대상경계가 있기에 법임이 드러나요.
그래서 색이 바로 곧 공입니다.

아주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자리입니다.
어떠한 모순과 갈등도 없어요.
비로소 삼계유심이요, 일체유심조라는 말들의 참된 의미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실체는 단지 한 개인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본래가 다 법이에요.
법 위에서 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삶이라는 꿈 속을 살아가는 겁니다.
2016/12/17 13:51 2016/12/1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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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선원 김태완 선원장님 법문동영상.

2016/12/17 06:45 2016/12/17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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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와서 길이 미끄럽다.
조심스럽게 산책하는 중...
2016/12/14 20:54 2016/12/14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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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를 보고 있습니다.

평소와 똑같이 모니터가 내게 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관찰해보면, 모니터는 확실히 보인다고 말할 수 있지만,

보는 나는? 

보는 나는 진정으로 있을까요?

한번 찾아보세요.

눈 앞의 객관사물은 다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고 하지만,

그렇게 하는 '나'라는 존재는요?

 

아마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어슴푸레하게 나의 존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텐데..

사실은 그것은 나라는 생각일 뿐이며, 진정한 나는 아닙니다.

모니터가 보이지만, 모니터를 보는 내가 없어요.

보는 내가 있다고 믿는게 그게 망상입니다.

 

진정한 나는 내 육신 속에 한정되어있지 않아요.

내 눈앞의 온갖 사물사물은 진정한 내 위에 드러나있는 경계일 뿐입니다.

경계는 허망한 것이지요.

물거품같고 환상같고 그림자같은 겁니다.

이 모든 경계들이 모두 다 내 안에서의 일입니다.

그렇게 경험이 되지요.

 
2016/12/12 21:55 2016/12/1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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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보면 선공부는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선공부와 인연이 되기가 어렵고, 또한 인연이 된다해도 크게 발심하고 바른선지식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실제로 선공부와 인연이 되고, 굳건히 발심을 하고 바른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이 공부 어려울 게 없습니다. 그동안 워낙에 오랫동안 망상분별하며 살아왔기에 그 생각이 떨어져나가고 바른생각이 세워지는데 조금 시간은 걸립니다만 선지식을 믿고 조금만 버티다보면 문득 내면에서 밝은 소식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계속 보림하면서 지내다보면 법을 보는 안목은 더욱 밝아지고 마음은 더욱 안정이 됩니다.

그런데 스스로 이 공부에 올인하겠다고 마음먹지 않는다면, 이 공부를 해서 좋은 결실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누가 옆에서 억지로 강요해서 될 문제도 아니구여.
한 가족 조차도 이 공부를 억지로 시킬 수가 없습니다.
공부를 하다보면 이 공부가 너무 좋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이 공부를 추천을 하게 되는데, 대개의 경우 별반 관심을 갖지 않더군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다 이 공부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며,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이 공부에 인연이 되는 분들이 스스로 알아서 할 수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2016/12/08 11:59 2016/12/0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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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에 이르는 어떠한 정해진 길도 없습니다. 눈밝은 선지식의 법문조차 달(깨달음)을 가리키는 손가락(방편)일 뿐이에요. 깨달음은 어디 깊은 곳에 숨겨져 있거나 저 우주밖 별나라에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의 존재가 깨달음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오해의 소지가 아주 많습니다. 아, 내가 깨달음 그 자체구나..라고 생각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그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뿐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요인은 공부인 스스로의 마음가짐입니다. 이미 그것인 우리 스스로의 존재가 깨달음의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가 아주 강하게 깨달음을 원해야 한다는 거지요. 발심만 분명하면 깨달음의 길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그리고 지극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깨달음의 실재를 믿어야하며 또한 그것을 깊이 염원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느날 문득 전혀 기대도 안한 상태에서 깨달음의 소식이 옵니다. 선지식의 법문의 효용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중요한 하나는 공부인의 마음속의 삿된 생각을 정리해준다는 것입니다. 즉, 삿된 견해를 지우고 바른 견해를 세우는 일입니다. 깨달음에 관한 수많은 삿된 관념때문에 깨달음이 쉽게 드러나지 못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삿된 관념을 없애고 바른 관념을 세우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바른 견해조차 뛰어 넘어야 합니다. 견해로는 여기에 접근불가니까요.

실제로 체험은 대부분 가볍게 옵니다. 체험이란 경계의 체험이 아니고 분별에서 놓여나는 체험이기에 아무런 체험 내용이 없어요.체험수기에 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대부분 분별에서 놓여나면서 경험되는 심리적 경계체험일 뿐입니다. 크게 의미부여할 게 없죠. 여하간 한 계기후에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알게 됩니다. 나는 내가 아닌거였죠. 그동안 알고있던 나는 내가 아니고 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진짜나는?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체험은 가능하죠.
2016/12/01 19:50 2016/12/01 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