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선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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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부는 아주 단순합니다.
한번 문득 자기의 본성을 본 후 그 본성자리에서 다가오는 경계에 집착하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마음의 힘이 약하면 아주 쉽게 경계에 속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가 깊어지고 법의 힘이 점차로 강화되면 아주 세밀한 경계에 대해서도 금방 알아차리게 되고 그에 끄달려가지 않게 됩니다.

자기의 본성을 본다함은,
그동안 자기도 모르게 밖의 대상경계(여기에는 생각,감정,느낌 등도 포함됩니다)를 따라다니다가 대상경계가 아닌 그 경계가 일고지는 본바탕에 한번 계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늘 자기 존재였지만, 자기 아닌 경계만을 보며 지내다가 문득 자기의 존재를 자각하는 것이지요.

체험후에도 법이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아직도 불이법에 정확하게 계합이 안되어서 그런거에요.
시간이 지나보면 압니다.
여전히 둘로 쪼개져있기에 미세하게 법을 분별하고 있어서 명확하지가 못한 겁니다.
뭔가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계속 그 불편함 속에 거하고 있어야 해요.
그러다보면 문득 그 불편함이 사라지고 본래자리가 분명하게 됩니다.
2017/11/22 12:01 2017/11/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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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견성을 해야 그 다음에 촛점을 정확히 맞춰가는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견성은 사실 어렵지가 않습니다. 

한번 생각이 끊어지는 체험? 발을 헛딛는다는 표현도 있던데...

그냥 문득 일순간 어떤 계기로 인하여, '아!'~하고..어떤 생각의 흐름속에 있다가 그냥 전체와 하나되는 그런 순간을 경험하는 거죠.

뭐 특별한 일이 벌어지는게 아닙니다.

그냥 내가 생각속에 빠져있다가 문득 그 생각을 벗어나는 아주 작은 경험인거죠.

 

그러고나면 이상하게도 소위 법열이라고 하는 경계체험들이 동반됩니다.

대개 이 체험에 많이 속죠.

아주 좋은 체험이니까요...

하지만 이 체험은 단지 경계일 뿐입니다.

이 체험은 그리 오래가지 않지요. 이내 사라집니다.

이 체험을 다시 기다리면 안됩니다.

그럼 진짜 체험을 또 놓치게 돼요.

진짜는 항상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에도 여기에 있었고, 현재에도 여기에 있으며 미래에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저 이 진짜의 본바탕이 항상 있는거고, 그 위에서 온갖 경계가 펼쳐지는 거지요.

 

견성이후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말이 있는데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공부란 결국 분별의 습에서 반야의 습으로 바뀌는 과정이기때문에 어느 정도의 시간은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늘 강조하시듯이,

얼마나 이 법속의 사람으로 살아가느냐..그 문제인 것 같아요.

법에 관해 말을 잘하는 것과, 실제로 법 속의 사람으로 여법하게 사는 것하고는 좀 다른 문제입니다.

아무리 법에 관한 안목이 뛰어나다고 해도, 실제 상황에서 흔들리게 된다면 공부에 문제가 있는 거겠죠. 사실 누구나 공부에 조금씩은 문제가 있는게 맞습니다. 저도 그렇구요. 그러기에 계속 공부하고자 하는 발심이 또 생기는 거겠죠. 

 

경외심을 갖고 법공부를 계속 하다보면 저절로 공부가 무르익지 않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불법에 관한 책을 보거나 강의를 들을 때, 또 도반님들과 대화를 나눌때, 참으로 그 시간이 즐겁게 느껴집니다.

행복한 시간입니다.^^

 

2017/11/19 14:50 2017/11/1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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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전에 어떤 친구에게 마음공부의 방편으로 "자기의 생각을 한번 바라보라"고 제안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제 말을 못 알아듣습니다. "생각을 바라보다니?"
생각과 너무나 한덩어리가 되어있기에 자기의 생각의 흐름을 바라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던 것입니다. 전 살짝 놀랬죠. 일반인의 경우 이 정도로 생각과 동일시가 강하게 되어있구나라고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 진실을 왜 모를까? 답답했죠.
하지만 저 자신도 과거를 돌아보면 그 친구와 똑같았습니다.
생각을 쓸 줄만 알았지, 자기의 생각이 뭔지를 전혀 몰랐어요.

생각도 사실은 다 본성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불에서 불꽃이 생겨나듯이, 생각도 우리의 본래마음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하지만, 생각에 사로잡혀 있게 되면 본래마음에 대해서는 깜깜하게 됩니다.
전혀 몰라요.
이 자리가 얼마나 편안하고 안정된 자리인지...
이 자리는 테두리가 없고 안과 밖이 없어 우주와 크기가 동일하다고 하죠.
그냥 이 하나의 본래마음이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그저 이 본바탕의 마음위에서 춤추는 불꽃과 같은 거여요.
자기가 자기를 모른다는 건 좀 말이 안됩니다.
우리는 오온에 대해서는 다 아는데, 정작 오온이 일어나는 그 바탕이 되는 우리의 참된 존재를 모르고 있어요.
그렇다고 오온 바깥에서 참된 존재를 찾으면 안됩니다.
굳이 말하면 오온이 곧 참된 존재입니다.
거울의 영상이 거울 자체이듯이요...

그렇게 자각의 체험을 해야 비로소 마음이 좀 쉬어집니다.
그리고 경계의 흐름을 구경할 수가 있어요.
이 공부에 반은 미쳐있어야 공부가 진전이 될 거에요..
2017/11/13 20:06 2017/11/1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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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이 문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물론 이 말도 방편삼아 생각으로 하는 말입니다.

실제로는 문도 없고, 들어오고 못들어오고 하는 일도 없어요.

 

그리고 자기의 의심이 다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해요.

의심이란게 잘 안사라지더군요.

물론 큰 의심들은 쉽게 떨어져 나가요.

하지만 실제로 체험자리에 들어왔어도 미세한 의심은 상당히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 같아요.

의심이란 말하자면 어두운 부분입니다.

아직 법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입니다.

단 한번의 체험으로 모든 의심이 싹 없어지긴 실제로 어렵죠.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의심이 남아있게 되면 공부에 자신감이 없게 돼요.

 

지금 당장 법에 분명하지 않으면 여전히 망상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불이법입니다.

과거에 불이가 되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러면 그건 망상이에요.

늘 언제나 항상 불이법 속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공부에 있어서 완벽함이란 없습니다.

흔히 말하듯이 법으로서는 늘 완벽하지만, 실제로 공부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점차로 공부가 더욱 깊어지고 안목이 또렷해지는 과정이 있는 것 같아요.

 

나라는 개체성은 망상입니다.

그냥 법하나가 있는거에요.

마니주(수정구슬)의 비유처럼, 우리의 존재는 마니주처럼 그저 존재할 뿐인데, 그 위에 온갖 경계들이 펼쳐집니다.

물론 마니주같은 어떤 물건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레서 본래무일물이라고 하는거죠.

 

사실 이런 복잡한 생각들을 머리속에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본래 이것뿐인데,

말로 풀어내려다보니까 이렇게 표현이 되는 겁니다.

실제로 경험되는 것은 이 세계가 다 나의 일로 느껴집니다.

경계가 있어서 법이 드러나지만, 경계가 없어도 늘 법은 여여하지요.

 

그냥 오랜만에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글을 올려봅니다.

올 한해도 얼마 안남았네요.

도반님들, 남은 기간 동안 잘 마무리 하시고, 매일 매일 자기 공부가 점점 향상 되는 좋은 나날들이 되기만을 소망해봅니다.

 

감사합니다.

합장.

2017/11/12 21:01 2017/11/1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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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깨달아있다는 말을 참으로 많이 듣습니다.
공부하시는 분의 입장에서는 이런 말을 들으면 참으로 난감하게 되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이미 깨달아있다고 하는데 왜 난 전혀 모르지? 법에 대해선 깜깜한거라..
그러니 아무리 그런 말을 듣는다해도 실감이 오질 않으며 오히려 기분만 더 나빠집니다.

근데 어처구니 없게도 그 말이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실 지금 이대로 이미 완전한 부처입니다.
뭘 따로 찾을 필요가 없어요.
오히려 따로 찾으려 하면 더욱 더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방편삼아 깨달음을 이야기 합니다.
깨달음이라는 말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망상을 진실로 알고 살고있다가 문득 자신의 진실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고 나면 깨달음이란 본래 없는 거라고 말을 하지요.
지금 이대로 이미 완전한데 본인 스스로 생각을 내어 자신은 육신에 갇혀있는 한 개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상심이 도라고도 합니다.
이 말을 자칫 오해하면 지금 현재 망상하는 마음의 상태를 도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어떤 계기를 통하여 자기의 진실된 정체성에 통달해야 하는 것이지요.

여하간 자기 스스로의 내면에서 어둠이 없어야 하며 법에 밝게 깨어있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진실이 실현되면 마음 속에 아무런 의문도 걸림도 없게 됩니다.
결국 한번 깨친 후에 남아있는 습에서 점차로 벗어나는 과정이 이 마음공부의 여정이라고 생각됩니다.
2017/11/11 10:32 2017/11/1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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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도 말하자면 일종의 분별된 생각이다.
오온중에 '행'에 해당될 것이다.
2017/11/07 08:38 2017/11/0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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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네이버블로그에 들어가보면 이 일을 밝힌 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됩니다.
아마도 좋은 법문들을 접할 기회가 예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많아졌기에 가능해진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요즈음 블로그에 거의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왠지 글을 올리기가 힘들게 느껴지더군요.
그냥 제 공부만 점검하면서 지냅니다.
점검이란 일상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끄달리는지, 얼마나 흔들림 없는 자리에 있는지...그런 것들을 보는 것이죠.
그리고 김태완 선생님 법문이나 법을 펴시는 다른 도반님들의 법문도 듣고 있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다른 도반님들의 글을 읽고 하다보면,
그래도 그 시간동안은 차분하게 법에 대해서 좀 집중하게 되는 효과는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고요한 시간이 참 좋구요.




2017/11/06 21:08 2017/11/06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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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건, 안하건 우리 모두는 각자 본래가 부처입니다.
공부를 하여 깨닫는 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공부하기 전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어요.
달라지는 것이 있으면 그건 참된 공부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좀 의아해 할 것입니다.
"아니, 지금의 내가 바로 부처라면, 왜 이렇게 법에 깜깜하며 사는게 왜 이리도 힘이 드는가?
그래서 좀 편하게 살아보고자 공부라는 걸 해왔는데 달라지는게 아무것도 없다면 그동안 헛고생한 게 아닌가?" 라구요...
어찌보면 헛고생한 게 맞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공부라는 과정이 없으면 또한 본래가 부처이면서도 영원히 중생의 탈을 쓰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법을 실감 못하시는 분들은 지금 뭔가를 착각하고 계신 겁니다.
여전히 법의 자리에 계시면서도 법을 못보고 생각을 내어 생각속의 세계를 헤매는 거니까요.
이 공부는 참으로 희한하여 완전히 하나로 딱 계합이 안되면 자꾸 틈이 생기고, 그 틈을 생각으로 메우게 되며 그로인해 불명확함과 의심이 계속 올라오게 됩니다.
뭔가가 찜찜하며 불편해지고 자신감이 없거든요.
법 스스로가 드러나서 밝아져야지, 어두운 부분을 생각으로 메우려하면 안됩니다.
참으로 법과 하나가 되면 (이 말도 문제가 있는 말입니다만) 
그냥 모든 일이 다 아무일이 없다고 하듯이, 다 나의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저 답답한 그 자리에서 오롯이 버티면 밝음은 저절로 올라오게 됩니다.
아직 시원하지 못한 분들이라면, 자꾸 생각으로 멀리 벗어나지 마시고,
답답한 그 자리에서 그냥 계속 버티고 계셨으면 합니다.
반드시 문득 좋은 소식이 올라올 겁니다.
그리고나면 정말이지, 더 이상 바랄게 없어집니다.
그저 요자리에서 계속 힘을 얻고 싶은 마음만 있다고 할까요...

오늘 거의 가을 날씨를 보이더군요.
매년 되풀이 되는 가을이지만, 그래도 너무 좋습니다..^^

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합장.



2017/08/30 17:31 2017/08/3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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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스로의 본래 존재가 바로 법입니다.

본래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일을 밝히지 못하신 분들은 여전히 생각속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더이상 따로 찾을 무엇이 없습니다.

아마도 초심자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좀 멍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혀 그렇게 실감이 되질 않기 떄문이죠.

따라서 선공부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본래존재를 깨닫는 작업일 뿐입니다.

내가 내 존재를 깨닫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본래 있던 그대로 있는 거지요.

이전엔 동쪽을 서쪽으로 알고 있다가 공부를 하여 체험을 하면 그냥 동쪽을 동쪽이라 바로 알 뿐입니다.

하지만 자기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면 이상하게도 번뇌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한 해탈에의 효험이 있기에 이 공부를 하는 거겠죠.

자꾸 지금 여기를 버리고 지금 보다 더 나은 해탈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결국 진정한 자기의 존재속에서 자기 존재의 망각의 세계속으로 빠져들뿐입니다.

망상을 해도 여기 이 자리에서 하는 것이고, 해탈을 해도 바로 이 자리위에서의 일입니다.

언하변오라고,

어떤 계기를 통해서 문득 분별망상이 쉬어져버리면, 이미 그대로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2017/07/09 09:17 2017/07/0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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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이 없어져야 합니다.

뭔가 어두운 구석이 있고 찜찜한 데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면, 아직 의심이 완전히 안떨어진 겁니다.

의심이 없어지려면 당연히 법이 또렷해야 하죠.

그런데 공부초기에는 법이 또렷하다는게 무슨 의미인지 참 알기가 어려워요.

뭔가가 있어서 법이 또렷하다고 하는게 아니거든요.

눈앞에 보이는 건 단지 경계 뿐이죠.

그런데, 경계가 보이는데 거기에서 법이 분명하면 됩니다.

 

이건 이치로 헤아릴 문제는 아닙니다.

자기 내면에서 스스로 답이 나와야 해요.

법이라는게 눈에 보이는게 아니어서 어렵게 느껴지지만, 차차로 실감이 되고 시간이 지나게되면 아주 쉽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저 모든 경계가 나의 일이 됩니다.

그렇게 여겨집니다.

내가 따로 있지는 않아요.

그저 경계가 있는 그 자리가 바로 나의 자리이지요.

 

이 공부는 쉬우면서도 어렵고, 또한 어려우면서도 쉬운 것 같습니다.

간혹 인터넷 상의 글들을 읽어보는데, 경계를 법으로 착각하시는 분이 상당히 많아 보입니다.

아직 법의 맛을 못보고, 법이 실감되지 않아서 그럴 겁니다.

 

오늘 날이 흐리고 비 소식이 있네요.

제 방의 화초의 초록이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더 이상 추구하지 않고 비로소 내 자리에서 그냥 푹 쉴 수 있도록,

도반님들 함께 열심히 공부해 나가기로 합시다.

 

감사합니다.

합장.

2017/07/02 21:02 2017/07/02 2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