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관심있는 분들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입니다. 무심선원에서 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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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를 보고 있습니다.

평소와 똑같이 모니터가 내게 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관찰해보면, 모니터는 확실히 보인다고 말할 수 있지만,

보는 나는? 

보는 나는 진정으로 있을까요?

한번 찾아보세요.

눈 앞의 객관사물은 다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고 하지만,

그렇게 하는 '나'라는 존재는요?

 

아마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어슴푸레하게 나의 존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텐데..

사실은 그것은 나라는 생각일 뿐이며, 진정한 나는 아닙니다.

모니터가 보이지만, 모니터를 보는 내가 없어요.

보는 내가 있다고 믿는게 그게 망상입니다.

 

진정한 나는 내 육신 속에 한정되어있지 않아요.

내 눈앞의 온갖 사물사물은 진정한 내 위에 드러나있는 경계일 뿐입니다.

경계는 허망한 것이지요.

물거품같고 환상같고 그림자같은 겁니다.

이 모든 경계들이 모두 다 내 안에서의 일입니다.

그렇게 경험이 되지요.

 
2016/12/12 21:55 2016/12/1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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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마음공부
가만히 생각해보면 선공부는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선공부와 인연이 되기가 어렵고, 또한 인연이 된다해도 크게 발심하고 바른선지식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실제로 선공부와 인연이 되고, 굳건히 발심을 하고 바른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이 공부 어려울 게 없습니다. 그동안 워낙에 오랫동안 망상분별하며 살아왔기에 그 생각이 떨어져나가고 바른생각이 세워지는데 조금 시간은 걸립니다만 선지식을 믿고 조금만 버티다보면 문득 내면에서 밝은 소식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계속 보림하면서 지내다보면 법을 보는 안목은 더욱 밝아지고 마음은 더욱 안정이 됩니다.

그런데 스스로 이 공부에 올인하겠다고 마음먹지 않는다면, 이 공부를 해서 좋은 결실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누가 옆에서 억지로 강요해서 될 문제도 아니구여.
한 가족 조차도 이 공부를 억지로 시킬 수가 없습니다.
공부를 하다보면 이 공부가 너무 좋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이 공부를 추천을 하게 되는데, 대개의 경우 별반 관심을 갖지 않더군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다 이 공부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며,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이 공부에 인연이 되는 분들이 스스로 알아서 할 수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2016/12/08 11:59 2016/12/0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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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쾌락의 두 언덕 사이에서 삶의 강은 흘러갑니다.
마음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삶과 더불어 흐르기를 거부하고 언덕에 들러붙을 때입니다.
삶과 더불어 흐른다는 것은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오는 것은 오고 가는 것은 가게 내버려두는 거지요.
욕망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실제 현실을 그것이 일어나는 바로 그때 관찰하십시요.
왜냐하면 그대는 일어나는 그 일이 아니고, 그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그대는 그 관찰자도 아닙니다.
그대는 일체를 포괄하는 의식이 그것의 나툼이자 표현인, 궁극의 잠재성입니다.

출처 : 아이앰댓 / 28쪽 / 탐구사 / 마하라지.
2016/12/03 20:45 2016/12/0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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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생겨날 수 있으려면 그 이전에, 그것이 그에게 생겨나는 어떤 사람이 존재해야 합니다. 모든 나타남과 사라짐은 어떤 불변의 배경에 대해 어떤 변화가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대의 모든 문제는 몸의 문제라는 것을 모릅니까? 음식,의복,주거,가족,친구,이름,명예,안전,생존-이 모든 것은 자신이 단지 하나의 몸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그대가 깨닫는 순간 의미를 상실합니다.


출처 : 아이앰댓 / 23쪽 / 탐구사 / 마하라지.


2016/12/03 19:43 2016/12/0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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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에 이르는 어떠한 정해진 길도 없습니다. 눈밝은 선지식의 법문조차 달(깨달음)을 가리키는 손가락(방편)일 뿐이에요. 깨달음은 어디 깊은 곳에 숨겨져 있거나 저 우주밖 별나라에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의 존재가 깨달음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오해의 소지가 아주 많습니다. 아, 내가 깨달음 그 자체구나..라고 생각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그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뿐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요인은 공부인 스스로의 마음가짐입니다. 이미 그것인 우리 스스로의 존재가 깨달음의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가 아주 강하게 깨달음을 원해야 한다는 거지요. 발심만 분명하면 깨달음의 길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그리고 지극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깨달음의 실재를 믿어야하며 또한 그것을 깊이 염원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느날 문득 전혀 기대도 안한 상태에서 깨달음의 소식이 옵니다. 선지식의 법문의 효용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중요한 하나는 공부인의 마음속의 삿된 생각을 정리해준다는 것입니다. 즉, 삿된 견해를 지우고 바른 견해를 세우는 일입니다. 깨달음에 관한 수많은 삿된 관념때문에 깨달음이 쉽게 드러나지 못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삿된 관념을 없애고 바른 관념을 세우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바른 견해조차 뛰어 넘어야 합니다. 견해로는 여기에 접근불가니까요.

실제로 체험은 대부분 가볍게 옵니다. 체험이란 경계의 체험이 아니고 분별에서 놓여나는 체험이기에 아무런 체험 내용이 없어요.체험수기에 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대부분 분별에서 놓여나면서 경험되는 심리적 경계체험일 뿐입니다. 크게 의미부여할 게 없죠. 여하간 한 계기후에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알게 됩니다. 나는 내가 아닌거였죠. 그동안 알고있던 나는 내가 아니고 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진짜나는?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체험은 가능하죠.
2016/12/01 19:50 2016/12/0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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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깨닫고 싶으면 그저 죽어라고 김태완선생님 법문을 들으십시요. 유튜브에 검색만 해도 꽤 많은 법문 동영상이 뜹니다. 들어보시고 별로 와닿지 않고 믿음이 안가면 믿음이 더 가는 다른 선지식을 찾아야 합니다. 믿음없이 하는 공부는 아상만 키워주니까요. 공연히 시간만 낭비하게 됩니다. 근데, 법문을 들어봤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웬지 믿음이 가고 호감이 느껴진다면 여기에서 끝을 보세요. 일단 발심을 하셨다면 그 다음에 요구되는 덕목은 인내와 끈기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꼭 필요해요. 가랑비에 옷젓는다고 옷이 젖으려면 시간이 지나야 하니까요.

법문이란 법을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잠든 공부인을 깨우는 작업입니다. 결국 깨달음은 선지식에게서 얻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깨달음을 아주 거창하고 대단한 것으로 상상하시면 안됩니다.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단지 스스로의 마음에서 분별망상하는 습에서 한번 놓여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아무것도 아닌 작은 체험하나로 그 사람의 내면은 완전히 바뀝니다. 아니 바뀌어갑니다. 그래서 그 계합의 체험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 한번의 계기가 없으면 아무리 그럴 듯한 말을 하고 법에 관한 상당한 지식이 있다해도 그저 알음알이일 뿐입니다. 마치 태양빛 아래에서 촛불을 들고있는 것과 똑같아요. 자기 내면이 밝아져서 스스로 만족스러워야지, 겉으로만 번지르르 하면 뭐합니까? 
꼭 바른법에 들어와야 합니다. 비로소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이지요.
2016/11/28 20:13 2016/11/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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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공부의 핵심은 자기 내면에서 집착을 하느냐 안하느냐, 그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내가 의지적으로 집착을 한다 안한다 그 문제는 아니구여, 저절로 자기 내면에서 집착이 일어나느냐, 완전히 끊어져서 항상 불이가 유지되느냐 그 문제이지요.

마음이 없다라는 표현도 사실 집착의 문제로 귀결이 됩니다.

보통 어떤 경계가 일어날 때 그 경계에 끄달리는 지점은 바로 집착의 지점이거든요,

끄달린다함은 집착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아직 나라는 생각이 남아있어 그것과 관련하여 경계에 매이게 되는 것이지요.

색이 바로 공이라 했는데,

이 말 역시 색이 있는데 거기에 전혀 끄달려가지 않고 집착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색을 파헤쳐봤더니 그 속성은 텅텅 빈 허공이더라, 이런 말이 아니죠.

색은 그대로 공이어서 따로 없앨 색은 없습니다.

 

무아란, 내면에서 마음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2016/11/25 14:18 2016/11/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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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는 마음의 공부이기에 몸으로 하는 수련, 수행 등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직 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가 이미 법자체이면서도 깜깜한 망상속에 빠져있습니다. 망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망상이 '나'라는 망상입니다. 우리는 모두 몸과 마음을 가진 한 개체적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습니다. 몸을 더욱 건강하게 하고 마음을 더 힘들지 않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 우리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목적일 겁니다.

그런데 불법공부를 하다보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가르침이 뭐냐하면 '무아'입니다. 즉, 내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오해해 무아지경, 어떤 초월적 삼매속에서 자신을 잊는 상태가 무아인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전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무아란 생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어떤 초월적 상태가 아닙니다.  사실은 우리의 존재의 본래모습이 바로 그것이에요. 무아입니다. 나라고 할 것이 없어요.

분명 눈앞에 온갖게 다 보이는데, 그것을 보는 내가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저 사물이 보일 뿐, 그것을 보는 주체라고 생각되는 '나'라는 존재는 깊이 탐색해보면 결국 허구의 망상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주체가 대상을 바라보는 식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사람을 일러 중생이라고 합니다. 중생은 항상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며 세상을 바라봅니다. 삶과 죽음, 옳음과 그름, 선과 악, 하늘과 땅, 천국과 지옥, 나와 너, 불행과 행복 등등.

그런데 불법공부를 하여 실상을 보게 되면, 모든 이분법은 그저 망상이요 경계이며 하나의 현상으로서 영속하지 못하고 생겨났다 사라졌다 합니다. 보는자와 보이는 대상이 따로 있는게 아닙니다. 마치 거울에 어떤 영상이 비춰졌을 때 영상은 아무리 다양하게 변하더라도 거울은 언제나 늘 하나이듯이, 우리의 존재의 실상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하여 비로소 번뇌망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본래 오염될 내가 없어요. 그저 경계가 흘러갈 뿐인데, 그 흘러가는 경계 하나하나위에 바로 진정한 내 존재가 오롯하게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2016/11/21 16:07 2016/11/2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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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기 위해서 어떤 수행등의 조작을 하면 안됩니다. 그 시간만큼 공부가 늦어지게 돼요. 수행을 하여 몸이나 마음상태가 많이 좋아질 수도 있고,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수행의 행위는 나쁜 것은 아니지요.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수행의 결과로 깨닫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본래가 불성이라고 하잖아요. 단지 그것을 체득을 못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문득 계합하여 그것을 실감하면 되는 것이지요. 갈고 닦아야 할 무엇은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이 되면 초심자들의 경우 머리가 아득해질 겁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사실 우리가 노력해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노력을 안하면 그냥 중생 그대로이구여. 노력은 하되 올바른 방법으로 노력을 해야합니다.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선공부에게 참 잘 적용이 되는 말이에요. 
먼저 눈밝은 선지식의 가르침을 들어야 합니다. 즉, 설법을 꾸준히 듣는 것, 이것이 공부방법의 전부에요. 설법은 법을 보여주는 직지인심의 가르침일 뿐, 어떤 내용을 알려주는 강의가 아닙니다. 

중생병은 망상병입니다.
스스로가 법 자체이면서도 오랫동안 망상속에서 살아왔으므로 법을 볼 줄 모릅니다. 이를 일러 자승자박, 무승자박이라고 하지요. 생각의 노예가 되어 생각의 주인인 법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어요. 설법은 자승자박, 무승자박의 묶인 끈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물론 저절로 그리되는 것이지 공부인이 스스로 묶인 것을 푸는 것은 아니에요. 자기 스스로는 법에 관한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며 해서도 안됩니다. 공부는 항상 무위로 이루어져야 진짜입니다. 

공부인의 마음가짐은 반드시 부처님 법을 깨닫겠다는 굳건한 마음을 먹고 아직 공부에 관한한 아무것도 아는게 없다고 하는 하심의 마음, 그리고 선지식의 설법을 꾸준히 듣겠다는 인내심, 그리고 진실됨과 법을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이런 것들 이어야 해요.
그게 진인사 대천명에서 사람이 할 수있는 전부이자 최선입니다. 그 이상을 하겠다고 달려들면 바로 유위행에 떨어져 공부를 망치며 역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2016/11/20 07:58 2016/11/20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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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깨닫기 위해서는 수행등의 어떤 행위를 해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수행을 하여 마음을 갈고 닦게 되면 그 결과로 깨달음이 온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한번 깨닫게 되면 그것이 마음공부의 끝인 것으로 알게됩니다. 하지만 진실은 그것과 오히려 반대입니다.


실제로는 수행등의 행위는 유위행으로 참된 공부와는 아무 상관도 없으며 자칫 어떤 경계를 체험해놓고는 그것을 법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게 됩니다. 바른 공부는 언하에 대오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즉, 선지식의 설법을 듣거나 우연히 어떤 계기가 되어 문득 분별에서 놓여지고 법에 계합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야 진짜 견성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견성체험을 하게 되면 그것이 공부의 끝이 아니라 사실은 비로소 공부의 시작이 되는 겁니다. 한번 불성을 봐도 오랜 습을 조복시키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더 공부를 해야합니다. 그러면서 점점더 법의 안목은 밝아지고 세밀해지고 유연해지게 됩니다. 

깨달음은 어떤 특별한 상태가 아닙니다.
단지 우리 모든 사람들의 존재의 본래모습인 것이지요. 그러니 갈고 닦아서 얻을 그 무언가가 아닌 것입니다. 금강경에도 무소득이라고 하듯이,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참으로 중요한데,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바로 얻은 바가 있는가 아닌가..하는 그 지점이지요.

평상심이 도라는 이야기가 있듯이,
우리의 평상심의 실상이 바로 도입니다.
마조스님은 마음이 부처라고도 했지요.;
하지만, 이는 그렇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스스로의 계합의 체험을 통해서 체득되어야 하는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6/11/20 07:36 2016/11/20 0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