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선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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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 인격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결로부터 말하자면,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물론 좋은 인격을 갖추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그건 뭐 너무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도를 깨닫는데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즉, 인격과 깨달음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에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깨닫고 나면 훌륭한 인격이 갖추어지겠지..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이유에서 입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 또한 상이 되거든요.
그러한 상에 매이면 더욱 법에 계합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니까, 그런 쪽으로는 관심을 갖지 마시고 오로지 법에 계합하고 싶다...는 간절함에만 온 마음이 모아져야 해요.

인격이란 사실 육체적 기질과 주변적 환경이 만나서 만들어진 합작품이에요.
기질은 육체적인 거라 어쩔 수 없는 거지만, 
환경적인 부분은 얼마든지 교정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인격, 즉 성격은 바뀔 수가 있어요.

견성체험을 하게되면 더 이상의 불만족을 거의 못느끼기에
심리적 환경요인이 상당 부분 변하게 되며 이로써 미성숙한 인격도 보다 성숙해질 수는 있어요.
뭔가 불만족이 있기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니 그게 인격으로 굳어진거니까요.
사람이 더욱 부드러워지고, 맺힌데가 없게 되며 마음은 한없이 평화롭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저 공부이후에 느끼는 효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그런게 법인가보다..하면 안됩니다.

그러니 깨달음에 대한 선입견을 모두 버리시고,
오직 스스로 깨달아 자기의 마음안에서 깨달음을 증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모든게 다 밝혀져요.
하지만 그렇다해도, 겉으로는 그저 평범한 한 개인의 삶을 계속 살아갈 뿐입니다.
능력이 되시는 분들은 법을 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자유인으로 살다가는거지요.

합장.
 
2016/11/11 23:03 2016/11/1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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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0 22:24 2016/11/1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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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부는 사실 별 것 없습니다.
도에 계합한 후 계합한 그 자리에 계속 익숙해지는 과정이죠.
도에 계합한다함은 마음이 없어진다는 말과 같은 건데,
마음이 없어진다는 말은 망상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본래 마음이라고 할 것이 없어서,
보면 보는 그 자체로서, 들으면 듣는 그 자체로서...
그저 하나로 경험이 되고 망상을 만들어 망상속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문제는 습의 힘이 강하다보니까,
자꾸 경계에 휘말려들어가 집착을 한다는데에 있어요.
체험이후 공부는 이 습을 조복시키는 과정입니다.
운전면허 따고 나도 운전을 오래한 사람이 더욱 노련하듯이,
법공부도 좀 비슷한 측면이 있어보입니다.
당연히 완벽한 운전자가 없듯이,
법공부의 끝은 없습니다.
습의 조복이라는 문제는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공부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얼마전 아들과 함께 닥터스트레인지라는 영화를 봤는데,
서양사람들이 얼마나 동양의 도를 신비적으로 생각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깨달음을 체험한 이는 엄청난 신비한 능력을 갖게 되더군요...ㅎㅎ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우주의 악과 싸우는 영화인 것 같아요.
물론 오락영화이지만,
결국 서양정신은 선과 악의 분별에서 못벗어나는 구나..라고 느꼈어요.
2016/11/01 10:33 2016/11/0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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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13:13 2016/10/2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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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는 달 비치고 소나무에는 바람부니
긴긴 밤 맑은 하늘에 무엇을 하겠는가.
- 증도가 -
2016/10/28 08:28 2016/10/2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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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마음공부에 입문하시는 분들의 경우 방향을 잘 잡으셔야 합니다.
사실 첨엔 뭐가 올바른 방향인지, 공부를 어떻게 하는 건지 감을 잡기가 좀 어렵죠.
저도 처음에 마음공부를 해보자고 결심했을 때, 뭘 어찌해야하는지 난감했으며
막연히 머리에 떠올랐던 것은 좌선이나 명상수행 같은 거였어요.
혹은 쿤달리니, 기수련 등등 뭔가를 닦아나가야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죠.
근데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보니 상당 부분 오류가 있었습니다.

이 공부는 '현재의 나'가 '깨달은 나'로 바뀌는게 아닙니다.
그런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해요.
사실 첨엔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지금의 나'는 보잘 것 없고 번뇌 투성이이니깐, 공부를 해서 깨닫게 되면
위대하고 멋지고 능력도 있는 대단한 각자가 되는 거겠지...
그 날을 위해서 지금 열심히 수행하자... 뭐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지금의 나!가 이미 더 이상 부족함이 없는 깨달음 자체였습니다.
근데 희한한 것은 '내가 이미 깨달아있구나!'라고 아는 것 만으로는 아무런 내적 변화를 이루질 못해요.
그래서 소위 마음공부라는 것을 하게 되며,
그 방향은 지금 현재 자기의 마음을 깨닫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평상심이 도'라는 말도 있죠.

그럼 어떻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올라올 텐데,
어떠한 방법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물고기가 물 속에서 물을 어떻게 확인하는가?
방법이 없어요.
그냥 깨달아야 해요.
굳이 이야기를 드린다면, 깨닫고자 많이 원해야 됩니다.
가슴으로 간절히 깨달음을 염원해야 해요.
그 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선지식의 바른 가르침을 들어야겠죠.

자신의 습관적인 생각의 흐름에서 한번 놓여나면,
바로 그 자리가 본래자리에요.
더 없어요.
그 자리에서 오래오래 익으면 저절로 깨달음이 분명해집니다.

그렇게 하는 겁니다.
동쪽으로 가야하는데 서쪽으로 아무리 열심히 가도 목적지에 도달 못합니다.
하여간, 옛날 마조스님도 마음이 부처라고 했듯이,
깨달음은 내 밖에 따로 있는게 결코 아니에요.
내 마음이 부처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깨닫고 나도 늘 그 사람이에요.
겉으로는 외모나 기능이나 지식이나, 심지어 성격구조 조차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똑같아요.
그러나 자기 스스로는 압니다.
이미 예전의 나는 없고 뭔가 새로운 변화가 찾아온 것을요.
그를 일러 법이라고 합니다.
이후는 그저 법자리에서 인연따라 유유자적하며 사는 거지요.
2016/10/23 09:01 2016/10/2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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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항상 지금 이 순간 명확해야 합니다.
언제 이런 저런 경험이 있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식이지요.
지금 당장 법이 분명하지 않으면 아직 법에 정확히 계합되었다고 할 수없어요.
그리고 자신의 계합체험을 경전이나 선어록에 나와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하려는 식으로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것또한 아직 법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굳이 경전을 인용안해도,
얼마든지 법을 드러내 보일 수 있거든요.

제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보건대,
법에 들어오는 체험을 했어도 상당 시간동안 법에 대한 안목이 없어요.
그저 뭔가 변화가 있다, 달라졌다, 편안하다 등등의 심리적 변화는 있는데,
누가 법이 뭐냐?라고 물으면 뭐라 답해야하나...이런 식으로 되더라구요.
마음 속으로 이게 법인가? 저게 법인가? 이렇게 됩니다.

그러다 선생님 말씀처럼 촛점이 딱 맞으면.
비로소 법에 대한 안목이 확실해집니다.

법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분명 뭐라할 거는 없는데 또 그래도 밝게 살아있거든요.
허공이라 해도 사실은 안맞는데, 물리적 허공은 그저 경계니까요.
공의 진정한 의미를, '아무것도 없다'라기 보다는 '분별되지 않는다'라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라는 선생님 말씀을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망상에서 빠져나와보니 사람들이 정말로 이렇게 심한 망상들을 하고 있구나라고 실감을 하게 됩니다. 지독한 망상병에 걸려있는 겁니다.

합장.
2016/10/20 08:02 2016/10/20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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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관한 모든 말과 글은 전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즉 방편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어떠한 말과 글도 이 자리를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어요.
오직 말과 글을 통하여 문득 자신의 내면이 열리고,
자신의 내면을 통해서 진실을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2016/10/16 22:05 2016/10/16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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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공부의 중요한 지점은 어떤 경계에 끄달려 들어가느냐, 아니면 늘 여법한 자리에 있느냐 그 부분인 것 같습니다.

초심자의 경우 여법한 자리 자체를 모르므로 거의 100% 끄달려 들어간다고 봐야되겠고,

공부를 하여 체험을 했어도 상당 시간동안 특정한 경계에 끄달려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법이야 본래가 여법한 것이고 새어나갈 틈이 없겠지만,

사람은 여전히 분별망상의 습이 강하기에 법과 하나되지 못하고 자꾸 망상경계속으로 빠져든다는 것이죠.

뭔가 자기의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이 있거나 걸림이 있을 때에는

어떤 부분에 있어 여전히 분별경계에 끄달려 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드러나면 그 자리가 또한 해결의 자리이기도 하므로 결코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식으로 공부는 계속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2016/10/14 21:07 2016/10/14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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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기쁨이 올라옵니다.

'나'의 한계가 사라지고 툭 터져서 눈에 보이는 경계 하나하나에서 

시원하게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에는 어김없이 그런 느낌이 올라와요.

절대적 안정감이랄까, 그런게 있어요.

밝게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단지 느낌을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이 세상 그대로 불세계네요.

2016/10/08 20:34 2016/10/08 2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