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관심있는 분들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입니다. 무심선원에서 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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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항상 지금 이 순간 명확해야 합니다.
언제 이런 저런 경험이 있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식이지요.
지금 당장 법이 분명하지 않으면 아직 법에 정확히 계합되었다고 할 수없어요.
그리고 자신의 계합체험을 경전이나 선어록에 나와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하려는 식으로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것또한 아직 법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굳이 경전을 인용안해도,
얼마든지 법을 드러내 보일 수 있거든요.

제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보건대,
법에 들어오는 체험을 했어도 상당 시간동안 법에 대한 안목이 없어요.
그저 뭔가 변화가 있다, 달라졌다, 편안하다 등등의 심리적 변화는 있는데,
누가 법이 뭐냐?라고 물으면 뭐라 답해야하나...이런 식으로 되더라구요.
마음 속으로 이게 법인가? 저게 법인가? 이렇게 됩니다.

그러다 선생님 말씀처럼 촛점이 딱 맞으면.
비로소 법에 대한 안목이 확실해집니다.

법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분명 뭐라할 거는 없는데 또 그래도 밝게 살아있거든요.
허공이라 해도 사실은 안맞는데, 물리적 허공은 그저 경계니까요.
공의 진정한 의미를, '아무것도 없다'라기 보다는 '분별되지 않는다'라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라는 선생님 말씀을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망상에서 빠져나와보니 사람들이 정말로 이렇게 심한 망상들을 하고 있구나라고 실감을 하게 됩니다. 지독한 망상병에 걸려있는 겁니다.

합장.
2016/10/20 08:02 2016/10/20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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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은 거미가 거미줄을 뽑아냈다가 다시 거두어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거미는 생시, 꿈, 잠이라는 세 가지 상태 모두의 근저에 있는데,
사람 안의 그런 거미를 아트만이라고 합니다.

출처 : 라마나 마하르쉬와의 대담 / 탐구사 / 41쪽
2016/10/19 12:33 2016/10/1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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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관한 모든 말과 글은 전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즉 방편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어떠한 말과 글도 이 자리를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어요.
오직 말과 글을 통하여 문득 자신의 내면이 열리고,
자신의 내면을 통해서 진실을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2016/10/16 22:05 2016/10/16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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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는 아무런 독립적 존재성이 없습니다. 세계라는 환을 실재하는 것처럼 펼쳐 놓은 다음, 마야는 그 희생자들의 무지에 편승하고 있습니다. 마야의 실재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마야는 사라집니다. 마야의 현현이 바로 순수의식 위에서 마치 거울 속의 상처럼 현출되는 우주입니다. 그러나 이 상들은 거울 없이는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마야는 본래 없고 아무런 실제적 존재성이 없다고 합니다. 거울의 상들은 결코 실재할 수 없습니다. 세계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288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12:42 2016/10/16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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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 육신이 죽을 때, 창조된 에고에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마 : 에고는 '나'라는 생각입니다. 미세한 형태로는 그것이 하나의 생각으로 남아있지만, 거친 측면에서는 마음, 감각 기관, 몸을 포함합니다. 깊은 잠 속에서는 그것들이 에고와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도 진아는 그대로 있습니다. 죽음에서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에고는 진아와 별개의 한 개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 창조되거나 파괴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아의 한 도구로 기능하며, 주기적으로 작동을 멈춥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이것을 (그 개인의) 탄생과 죽음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283-284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12:38 2016/10/1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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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의 존재는 거기서 몸이 태어나고, 그 안에서 몸이 살아가고, 그 속으로 몸이 해소되는 그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나 자기가 몸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265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12:36 2016/10/1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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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육신이 아닙니다. 진아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세상이 그 안에서 움직입니다. 그대는 본래의 그대일 뿐입니다. 그대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여기를 떠나는 것처럼 보이는 그 뒤에도, 그대는 여기에 있고 저기에 있고 도처에 있습니다. 이 장면들만 바뀌는 것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246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12:35 2016/10/1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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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의 '나'는 몸을 포함합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나'와 별개의 어떤 것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설사 몸이 떨어져 나간다 해도 그 '나'에게는 아무 손실이 없습니다. '나'는 똑같은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만일 그 몸이 자신이 죽었다고 느낀다면 그런 질문을 하라 하십시요. 그러나 몸은 지각력이 없어 그런 질문을 하지 못합니다. '나'는 결코 죽지 않으며, 그런 질문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가 죽습니까? 누가 질문을 합니까? 

죽음이란 하나의 생각일 뿐 그 이상은 아닙니다. 생각하는 자는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 생각하는 자더러 우리에게, 그가 죽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해 보라 하십시요. 실제하는 '나'는 말이 없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239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12:34 2016/10/16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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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정말 태어났습니까?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탄생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있고 난 뒤에 몸-생각이 일어나고 몸이 보입니다. 그러고 나면 탄생에 대한 생각, 탄생 이전의 상태, 죽음, 죽음 뒤의 상태에 관한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이것들이 다 마음일 뿐입니다. 
몸은 '나'가 아닙니다. 진아는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진인들은 일체가 자기 안에 있고, 자기의 것임을 봅니다. 그 안에는 어떤 다양성도 없습니다. 따라서 탄생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235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12:33 2016/10/1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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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는 항상 오염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 가지 상태 모두를 통해 흘러가는 바탕입니다. 생시가 사라져도 있고, 꿈의 상태가 사라져도 있고, 잠의 상태가 사라져도 내가 있습니다. 그 상태들은 되풀이되지만 그래도 내가 있습니다. 그 상태들은 영화에서 스크린 위를 움직이는 화상과 같습니다. 그것은 스크린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이 상태들이 사라진다 해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234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12:32 2016/10/16 1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