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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는 항상 오염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 가지 상태 모두를 통해 흘러가는 바탕입니다. 생시가 사라져도 있고, 꿈의 상태가 사라져도 있고, 잠의 상태가 사라져도 내가 있습니다. 그 상태들은 되풀이되지만 그래도 내가 있습니다. 그 상태들은 영화에서 스크린 위를 움직이는 화상과 같습니다. 그것은 스크린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이 상태들이 사라진다 해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234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12:32 2016/10/16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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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생각은 일어났다 가라앉았다 하지만, '나'의 참된 의미는 그 둘을 넘어서 있습니다. 그대의 존재에는 단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잠을 잤던 그대가 지금은 깨어있습니다. 그대가 깊이 잠들어 있을 때는 불행이 없었는데, 지금은 불행이 존재합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런 차이를 경험합니까? 잠들어 있을 때는 '나'라는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참 '나'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거짓 '나'가 활개치고 있습니다. 이 거짓 '나'가 그대의 올바른 앎을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이 거짓 '나'가 어디서 일어나는지 찾아보십시요. 그러면 그것은 사라집니다. 이때 그대는 오로지 본래의 그대, 즉 절대적 존재가 될 것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218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12:30 2016/10/1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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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가 자기 안에 들어있습니다. 
나는 고정되어 있는 반면, 무수한 우주들은 내 마음 속의 개념이 되어 내 안에서 돌아간다. 
이 명상이 최고의 오른돌이이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212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08:40 2016/10/16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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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공포는 '나'라는 생각이 일어난 뒤에야 일어납니다. 
그대는 누구의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누구에게 그 두려움이 있습니까? 
자기와 육체의 동일시가 있습니다. 
이 동일시가 있는 한 공포가 있겠지요.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202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08:38 2016/10/1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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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지각은 하나의 형상, 아마도 몸과 연관되어 있겠지요. 순수한 진아와는 아무것도 연관될 수 없습니다. 진아는 연관되어 있지 않은 순수한 실재이며, 그 빛 안에서 몸, 에고 따위가 빛나는 것입니다. 모든 생각이 가라앉고 나면 순수한 의식이 남게 됩니다. 잠에서 막 깨어나서 세계를 자각하기 전에 그 순수한 '나-나'가 있습니다. 잠들지 말고 생각들에 점유당하지도 말고 그것을 착파하십시요. 그것을 확고히 붙들면 설사 세계가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보는 자는 현상에 영향받지 않고 남게 됩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193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08:38 2016/10/1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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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그대 자신을 몸과 동일시하고, 보는 것을 눈과 동일시하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이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누가 봅니까? 어떻게 봅니까? 단 하나의 의식이 있을 뿐인데, 이것이 '나'라는 생각으로 나타나서 자신을 몸과 동일시하고, 눈을 통해 스스로를 투사하여 주위의 사물들을 보는 것입니다. 그 개인은 생시의 상태에 제한되어 있으면서 뭔가 다른 것을 보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감각 기관의 증거를 확실한 권위가 있는 것으로 여기겠지요. 그러나 그는 결코 보는 자, 보이는 것, 보는 행위가 모두 같은 의식, 즉 '나-나'의 나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관은 진아가 눈으로 볼 수있는 것일 거라는 환상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실 (실재하는 것으로서) 눈으로 볼 수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대는 지금 그 '나'를 어떻게 느낍니까? 그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위해 거울을 앞에 놓고 보아햐 합니까? (존재한다는) 그 자각 자체가 '나'입니다. 그것을 깨달으십시요. 바로 그것이 진리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193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08:37 2016/10/1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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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 자신의 경험상 진아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르고 자기를 육신과 동일시하면서 불행을 느낍니다. 
이것이 모든 불가사의 중에서도 가장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우리는 진아입니다. 
왜 진아로서 안주하여 불행을 없애버리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자신이 육신이 아니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육신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은 그는 육신이자 다른 모든 것이기도 합니다. 
육신은 일부분에 불과하지요.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190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08:35 2016/10/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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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없는 잠 속에서는 세계도 없고, 에고도 없고, 불행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진아)는 그대로 있습니다. 
생시의 상태에서는 이런 것들이 다 있는데, 그래도 자기는 있습니다. 
항상 존재하는 진아의 지극한 행복을 깨달으려면 찰나적인 사건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대의 성품은 지복입니다. 
나머지 모든 것이 그 위에 덧씌워지는 그것을 발견하십시요. 
그러면 그대는 순수한 진아로 남게 됩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186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08:34 2016/10/1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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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사라지고 실재가 스스로 빛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실재이면서 실재를 얻으려고 한다는 이보다 더 큰 신비는 없습니다. 우리는 실재만을 경험할 뿐입니다. 
2016/10/16 08:32 2016/10/1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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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들이 존재하려면 관찰자나 사색자로서의 자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 세계들의 실재성은 그 관찰자나 사고자의 실재성과 같은 정도입니다. 
그런 세계들은 그 관찰자나 사고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것들은 자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무지한 사람조차도 대상들을 볼 때는 자기를 볼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미혹되어 자기를 그 대상, 즉 육체나 감각 기관 등과 동일시하고, 세계안에서 놉니다. 
주체와 대상-모두가 진아 안에 합일됩니다. 
보는 자도 없고 보이는 대상도 없습니다.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은 바로 진아입니다. 
다수의 자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진아일 뿐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155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08:31 2016/10/16 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