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관심있는 분들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입니다. 무심선원에서 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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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소리가 들립니다.

이 소리가 어디에서 나타나서 어디로 사라질까요?

질문은 '어디에서?'라고 했지만, 답은 '어디다'라고 나오면 안됩니다.

모든 질문은 공부인으로 하여금 법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지, 어떤 답을 듣기 위함이 아니지요.

그냥 내 존재의 본바탕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게 특별한 어떤 무언가가 아니라 그냥 지금 이대로에요.

 

문제는 누구나 다 이 본바탕 자체이면서 문득 분별을 내어 그 분별속에서 법을 찾게 된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그저 분별속의 일일 뿐입니다.

그냥 본래가 이 하나의 일인데, 그것을 놓치고는 습관적으로 분별에 떨어져서 끊임없이 법을 찾게 됩니다.

 

내가 내 몸을 확인하듯이, 내 스스로가 내 존재의 본바탕을 확인하면 됩니다.

내가 내 몸을 감각을 통해서 확인한다기 보다는 그냥 그 자체로 알지 않습니까?

내 존재도 그냥 문득 통해서 하나가 되는거지, 어떤 이해나 감각을 통해서 아는 것은 아니지요.

 

본래 나랄 것이 없으므로 아무런 걸림이 없으며,

모든 현상들이 그저 내 본바탕 위에서의 일일 뿐임을 확연하게 알게됩니다.

할 일이 없어요.

그저 사물사물이 오고갈 뿐입니다.

2017/02/18 08:49 2017/02/1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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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란 결국 자기 스스로의 존재의 무한성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이전에는 자기 스스로의 존재가 작은 육신 안의 어딘가에 위치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자기 스스로의 존재는 내 육신 안 뿐만 아니라 온 우주 전체에 두루 존재함을 깨닫게 됩니다. 이전에는 법은 모르고 경계가 실재하는 줄 알았는데 공부를 하면서는 경계란 그저 법위에서 일어나는 허망한 그림자요 물거품이요 환상같은 거라는 것 실감하게 됩니다.

자기 공부의 진전을 위해서는 온마음이 이 공부쪽으로 향해있어야 합니다. 너무 지나치면 안되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좀 몰아치는 면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우직하게 밀어붙인다고나 할까요..마치 풍선이 있는데 그 풍선에 압력을 주면 약해진 부위가 터지면서 바람이 잘 빠져나가듯이...약간은 공부에 힘이 실려야 합니다.

실제로 이 공부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내가 내 존재를 확인하는 작업일 뿐입니다.
평소에는 '나'에 대해선 잘 모르고 '나 아닌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살아온 세월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통상적으로 '나'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나 아닌것'에 포함되는 대상경계입니다. '나'라는 것은 본래 없어요. 그것은 마음이 지어낸 망상일 뿐입니다. 그냥 눈 앞에 사물이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무아라고 합니다.
내가 없으니 눈 앞의 사물도 참으로 있는게 아니지요. 사실은 이 법하나가 드러나있을 뿐이에요.
그렇게 되면 비로소 시원하게 됩니다.
2017/02/17 12:38 2017/02/17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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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법에 대한 의심이 없습니다. 법공부에 인연이 닿질 않아서이죠. 그런데 공부인들은 세간삶에 만족 못하고 법을 갈구하게 됩니다. 도대체 법이 뭘까 의문을 갖게 돼요. 그래서 소위 마음공부라는 것을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공부가 끝나는 지점은 의문이 더 이상 안생기는 지점이거든요. 바로 지금 있는그대로의 현상태입니다. 공부하기 전의 상황과 똑같죠.

지금의 자리에서 조금도 떨어져있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중생 그대로가 이미 부처였던거죠. 그런데 이런 말을 들으면 또다시 의문이 올라옵니다. '중생 그대로 부처라는데 왜 나는 법에 깜깜한 걸까?' 이게 바로 의문이거든요.. 이 의문에서 한번 벗어나는 걸 일러 체험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끝없는 분별망상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있어요. 꿈에서 깨어난 것과 비슷하기에 뭘 얻거나 달라진 건 전혀 없지요. 그냥 그 전의 그 사람이에요. 하지만 한번 망상의 흐름에서 놓여났기에 비로소 이미 지금 이대로의 내가 부처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법은 본래 밝아있습니다.
깨어남이란 내가 깨어나는게 아니라 본래 개아인 내가 없음을 알게되면서 대상경계들이 깨어나는 겁니다.
대상경계들에 따라가지만 않으면 법이 홀로 밝은거죠..

합장
2017/02/03 08:20 2017/02/0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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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매직아이 비유를 듭니다.
이거 잘 못보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시선을 대상에 촛점을 안맞추고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면 매직아이의 입체모양이 딱 보이게 되거든요. 그러다 눈을 어딘가에 촛점을 맞추게 되면 또 사라져요.
근데 그냥 보면 그저 평면에 어지러이 문양이 보일 뿐, 입체는 안드러나요.
그러다 잘 보면 입체가 확 드러나서 분명하거든요.

깨달음도 이와 비슷합니다.
법이 뭐냐고 물어보면 선지식은 손가락을 들어올려 보입니다.
그럼, 손가락이 왜 깨달음이지하면서 한참을 고민하게 되는데,
나중에 이걸 알게되면 손가락이란 모양이 아니라 그 모양과 하나이지만 손가락은 아닌 것,
말로 표현하면 이런 억지가 나옵니다.

대상사물이 다 여기에서 비추어진 영상입니다.
그래서 거울이니 마니주니 이런 비유를 듭니다.
혹은 해인삼매라고도 하죠.
우리는 이미 본래가 해인삼매 상태입니다.

희한하게 분별에 발을 딛고 있으면 이게 안보여요.
문제는 어떤 상황에서 경계를 따라가느냐, 아니면 그경계에서 법을 볼 줄 아느냐, 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첫 체험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조금만 관심갖고 하다보면 문득 시각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그 이후의 공부가 사실은 시간이 많이 걸리죠.
2017/02/02 11:07 2017/02/0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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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처음부터 끝까지 유일한 장애는 바로 생각입니다.
생각이 앞장서면 법은 희미해져요.
법이 분명해져야 비로소 쉬어지며 비로소 온 세상이 바로 이 하나 마음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법이 건드려지면 웬지 기분이 좋고 가벼워져요.
반대로 생각이 움직이면 공명없는 탁한 소리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직 법을 체험 못하신 분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번 법을 맛본 분들도 이후 자기의 생각에 속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합니다.

법은 이미 이대로 완전히 드러나있습니다.
이런저런 가르침은 그저 이미 드러나있는 법을 실감하라고 자극을 주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멀리서 찾으시면 안됩니다.
밖에서 새소리가 들립니다.
바로 여기에서 온 전체가 소리없는 진동을 하면 돼요.
개체적인 나란 것은 본래 없습니다.
육신이 있고 생각 느낌이 있고 밖에 흰 눈이 쌓여있고 앙상한 나뭇가지가 있지, 거기에 내가 어디있습니까?
그것뿐이여요.

생각에만 안속으면 본래 공부랄게 없습니다.

합장.
2017/02/01 08:05 2017/02/0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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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인이 문득 견성체험을 하게 되면 비로소 법을 보는 안목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 전에는 전부 알음알이 일 뿐, 법안 자체가 없어요.
나름대로 법에 관한 상상을 할 수는 있지만, 그저 상상일 뿐 법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공부에의 시간을 단축시키려면 법에 관한 지식을 쌓으려고 할 게 아니라, 하루빨리 법을 체험을 하여 법 속의 사람이 되어야해요.

세속공부도 집중력이 뛰어나야 공부를 잘 하는 것처럼, 마음공부도 그와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머리의 집중력이라기 보다는 가슴의 절실함, 순수함, 이런 부분들이에요.
항상 법에 대한 궁금함과 깨닫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가득차 있어야 어느날 문득 자기도 모르게 망상에서 발을 헛딛고 본래면목 속으로 풍덩 빠지게 됩니다.
공부를 오래했으면서도 아직 체험이 오지 않았다면, 뭔가 집중하는 힘이 부족해서 그럴 겁니다.
세속일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오로지 공부에만 올인을 해보세요.
안그러면 공부도 놓치고 세속일도 놓칩니다.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어요.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나이를 먹고, 세속삶에 대해서 배신을 당하게 되죠.
아무것도 남는게 없으며 그저 허망하게 하루하루가 지나갈 뿐입니다.
공허한 희망을 안고 살아보려하지만, 나중에 보면 별 것이 없죠.
그러다 몸에 병생기고 아프고 그러면 지나온 날들을 후회해보지만 소용없는 일입니다.
더 나이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영적인 자유, 근본적인 해탈공부를 해야합니다.
선체험을 했어도 공부가 충분히 익으려면 수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합니다.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이 자신의 마음공부를 점검하고,
매일매일의 삶에서 얼마나 끄달리는지, 혹은 얼마나 자유로운지, 그런 점들을 항상 염두에 두고 법문을 들으며 자기 공부를 갈고 닦아야 할 것 같습니다.
2017/01/08 09:32 2017/01/0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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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있어 마음공부에 입문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마음공부를 하면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게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문이 사라져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깨달음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일어났다면, 그 해답은 깨달음은 이러이러한 거야, 라고 대답이 나와야 하거든요.
세속법에서는 그게 맞아요.
그래야 의문이 해소가 되고 비로소 만족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마음공부에 있어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주어지는게 아니라, 그 의문이 사라지는거에요.
왜 그러냐하면, 그 의문의 뿌리인 분별망상에서 벗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진리에 눈이 떠지므로, 어떠한 의문도 안만들어집니다.

오늘 어떤 분이 제게 전화를 하여 다소 화가 나신 듯한, 혹은 절망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도대체 깨달음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더군요.
전 좀 난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깨달음이 훤히 드러나있고, 그 분도 지금 그 자리에서 질문을 하시고 계신거거든요.
'바로 그거다.' 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고 '김태완선생님 법문을 최소한 6개월 정도 들어보시라'고 권해드렸습니다.
공부에 대한 열의가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조금만 안내를 받으시면 금방 터져버릴 것 같은..그런 상태 같아요.

깨달음은 쉽지만 어렵습니다.
끈기와 굳건한 발심으로 한 곳만 파십시요.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서 좋은 소식이 올 겁니다.
그리곤 빙그레 웃으실 거에요.
이런게 있었구나..별 것 아니네, 그런데 좋네..라고 하실 겁니다.

합장.
2016/12/29 17:30 2016/12/2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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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에서는 내 몸과 내 마음이 있고, 내 몸과 내 마음을 가진 나라는 사람이 물질로 된 세계속에서 산다고 이해한다. 이것은 중생의 망상이다.

깨닫게 되면, 나라는 게 없다.

나라는 게 망상이다. 내 마음이라는 것도 없고, 마음이 있다면 이 세계자체가 마음이다.

깨달았느냐 아니냐의 경계선은 이렇게도 말할 수가 있다.

이 세계가 곧 마음이냐, 아니면 내 마음이라는게 따로 있느냐,

그게 깨달아서 법계에 통달했느냐 아니냐의 차이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부 중생이다.


몸과 마음이라는 그 개념이 사라지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아니고 그냥 한개의 세계인데 그 한개의 세계가 차별이 없을 때 그것을 마음이라고 하고 차별이 있을 때 그것을 만법이라고 한다.

마음은 만법이 아니라 일심법이다.

 

- 김태완선생님 화엄일승법계도 법문동영상 중에서 -

2016/12/27 22:54 2016/12/2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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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부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이 무엇인지만 알면 되겠네요.
마음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보통 육체와 대비되어 마음..합니다.
이때의 마음이란 정신현상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지지요.
내 마음, 네 마음..
즉, 내 생각, 감정, 느낌 등등, 네 생각, 감정, 느낌 등등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알고있는 마음은 사실은 마음위에 나타나는 정신적인 경계일 뿐입니다.
경계는 일어났다 사라지는 허망한 것이지요.
'마음이 부처'라고 할 때의 마음은 그런 정신적인 경계를 말함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무얼까요?
마음은 무엇이라고 정의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언가가 정의가 되려면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마음은 본래 허공처럼 텅비어서 모습도 없고 본래 한 물건도 없거든요.
모습으로는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 마음바탕 위에서 온갖 우주 삼라만상이 생멸변화를 하는 겁니다.

마음은 알아차릴 수는 없으나 깨달을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본래 이 마음자체이니까요.
내가 내 마음을 깨닫는 건데,
이때 '나'라고 표현은 했지만, 이 육신이 나는 아닙니다.
내가 곧 법이에요.
법이 법을 깨닫는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군요.
법은 대상경계가 있기에 법임이 드러나요.
그래서 색이 바로 곧 공입니다.

아주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자리입니다.
어떠한 모순과 갈등도 없어요.
비로소 삼계유심이요, 일체유심조라는 말들의 참된 의미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실체는 단지 한 개인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본래가 다 법이에요.
법 위에서 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삶이라는 꿈 속을 살아가는 겁니다.
2016/12/17 13:51 2016/12/1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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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를 보고 있습니다.

평소와 똑같이 모니터가 내게 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관찰해보면, 모니터는 확실히 보인다고 말할 수 있지만,

보는 나는? 

보는 나는 진정으로 있을까요?

한번 찾아보세요.

눈 앞의 객관사물은 다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고 하지만,

그렇게 하는 '나'라는 존재는요?

 

아마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어슴푸레하게 나의 존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텐데..

사실은 그것은 나라는 생각일 뿐이며, 진정한 나는 아닙니다.

모니터가 보이지만, 모니터를 보는 내가 없어요.

보는 내가 있다고 믿는게 그게 망상입니다.

 

진정한 나는 내 육신 속에 한정되어있지 않아요.

내 눈앞의 온갖 사물사물은 진정한 내 위에 드러나있는 경계일 뿐입니다.

경계는 허망한 것이지요.

물거품같고 환상같고 그림자같은 겁니다.

이 모든 경계들이 모두 다 내 안에서의 일입니다.

그렇게 경험이 되지요.

 
2016/12/12 21:55 2016/12/12 2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