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관심있는 분들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입니다. 무심선원에서 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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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에서는 내 몸과 내 마음이 있고, 내 몸과 내 마음을 가진 나라는 사람이 물질로 된 세계속에서 산다고 이해한다. 이것은 중생의 망상이다.

깨닫게 되면, 나라는 게 없다.

나라는 게 망상이다. 내 마음이라는 것도 없고, 마음이 있다면 이 세계자체가 마음이다.

깨달았느냐 아니냐의 경계선은 이렇게도 말할 수가 있다.

이 세계가 곧 마음이냐, 아니면 내 마음이라는게 따로 있느냐,

그게 깨달아서 법계에 통달했느냐 아니냐의 차이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부 중생이다.


몸과 마음이라는 그 개념이 사라지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아니고 그냥 한개의 세계인데 그 한개의 세계가 차별이 없을 때 그것을 마음이라고 하고 차별이 있을 때 그것을 만법이라고 한다.

마음은 만법이 아니라 일심법이다.

 

- 김태완선생님 화엄일승법계도 법문동영상 중에서 -

2016/12/27 22:54 2016/12/2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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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부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이 무엇인지만 알면 되겠네요.
마음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보통 육체와 대비되어 마음..합니다.
이때의 마음이란 정신현상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지지요.
내 마음, 네 마음..
즉, 내 생각, 감정, 느낌 등등, 네 생각, 감정, 느낌 등등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알고있는 마음은 사실은 마음위에 나타나는 정신적인 경계일 뿐입니다.
경계는 일어났다 사라지는 허망한 것이지요.
'마음이 부처'라고 할 때의 마음은 그런 정신적인 경계를 말함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무얼까요?
마음은 무엇이라고 정의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언가가 정의가 되려면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마음은 본래 허공처럼 텅비어서 모습도 없고 본래 한 물건도 없거든요.
모습으로는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 마음바탕 위에서 온갖 우주 삼라만상이 생멸변화를 하는 겁니다.

마음은 알아차릴 수는 없으나 깨달을 수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본래 이 마음자체이니까요.
내가 내 마음을 깨닫는 건데,
이때 '나'라고 표현은 했지만, 이 육신이 나는 아닙니다.
내가 곧 법이에요.
법이 법을 깨닫는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군요.
법은 대상경계가 있기에 법임이 드러나요.
그래서 색이 바로 곧 공입니다.

아주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자리입니다.
어떠한 모순과 갈등도 없어요.
비로소 삼계유심이요, 일체유심조라는 말들의 참된 의미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실체는 단지 한 개인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본래가 다 법이에요.
법 위에서 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삶이라는 꿈 속을 살아가는 겁니다.
2016/12/17 13:51 2016/12/1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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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를 보고 있습니다.

평소와 똑같이 모니터가 내게 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관찰해보면, 모니터는 확실히 보인다고 말할 수 있지만,

보는 나는? 

보는 나는 진정으로 있을까요?

한번 찾아보세요.

눈 앞의 객관사물은 다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고 하지만,

그렇게 하는 '나'라는 존재는요?

 

아마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어슴푸레하게 나의 존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텐데..

사실은 그것은 나라는 생각일 뿐이며, 진정한 나는 아닙니다.

모니터가 보이지만, 모니터를 보는 내가 없어요.

보는 내가 있다고 믿는게 그게 망상입니다.

 

진정한 나는 내 육신 속에 한정되어있지 않아요.

내 눈앞의 온갖 사물사물은 진정한 내 위에 드러나있는 경계일 뿐입니다.

경계는 허망한 것이지요.

물거품같고 환상같고 그림자같은 겁니다.

이 모든 경계들이 모두 다 내 안에서의 일입니다.

그렇게 경험이 되지요.

 
2016/12/12 21:55 2016/12/1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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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보면 선공부는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선공부와 인연이 되기가 어렵고, 또한 인연이 된다해도 크게 발심하고 바른선지식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실제로 선공부와 인연이 되고, 굳건히 발심을 하고 바른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이 공부 어려울 게 없습니다. 그동안 워낙에 오랫동안 망상분별하며 살아왔기에 그 생각이 떨어져나가고 바른생각이 세워지는데 조금 시간은 걸립니다만 선지식을 믿고 조금만 버티다보면 문득 내면에서 밝은 소식이 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계속 보림하면서 지내다보면 법을 보는 안목은 더욱 밝아지고 마음은 더욱 안정이 됩니다.

그런데 스스로 이 공부에 올인하겠다고 마음먹지 않는다면, 이 공부를 해서 좋은 결실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누가 옆에서 억지로 강요해서 될 문제도 아니구여.
한 가족 조차도 이 공부를 억지로 시킬 수가 없습니다.
공부를 하다보면 이 공부가 너무 좋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이 공부를 추천을 하게 되는데, 대개의 경우 별반 관심을 갖지 않더군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다 이 공부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며,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이 공부에 인연이 되는 분들이 스스로 알아서 할 수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2016/12/08 11:59 2016/12/0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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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공부의 핵심은 자기 내면에서 집착을 하느냐 안하느냐, 그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내가 의지적으로 집착을 한다 안한다 그 문제는 아니구여, 저절로 자기 내면에서 집착이 일어나느냐, 완전히 끊어져서 항상 불이가 유지되느냐 그 문제이지요.

마음이 없다라는 표현도 사실 집착의 문제로 귀결이 됩니다.

보통 어떤 경계가 일어날 때 그 경계에 끄달리는 지점은 바로 집착의 지점이거든요,

끄달린다함은 집착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아직 나라는 생각이 남아있어 그것과 관련하여 경계에 매이게 되는 것이지요.

색이 바로 공이라 했는데,

이 말 역시 색이 있는데 거기에 전혀 끄달려가지 않고 집착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색을 파헤쳐봤더니 그 속성은 텅텅 빈 허공이더라, 이런 말이 아니죠.

색은 그대로 공이어서 따로 없앨 색은 없습니다.

 

무아란, 내면에서 마음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2016/11/25 14:18 2016/11/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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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 인격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요?
결로부터 말하자면,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물론 좋은 인격을 갖추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그건 뭐 너무 당연한 이야기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도를 깨닫는데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즉, 인격과 깨달음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에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깨닫고 나면 훌륭한 인격이 갖추어지겠지..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이유에서 입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 또한 상이 되거든요.
그러한 상에 매이면 더욱 법에 계합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니까, 그런 쪽으로는 관심을 갖지 마시고 오로지 법에 계합하고 싶다...는 간절함에만 온 마음이 모아져야 해요.

인격이란 사실 육체적 기질과 주변적 환경이 만나서 만들어진 합작품이에요.
기질은 육체적인 거라 어쩔 수 없는 거지만, 
환경적인 부분은 얼마든지 교정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인격, 즉 성격은 바뀔 수가 있어요.

견성체험을 하게되면 더 이상의 불만족을 거의 못느끼기에
심리적 환경요인이 상당 부분 변하게 되며 이로써 미성숙한 인격도 보다 성숙해질 수는 있어요.
뭔가 불만족이 있기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다보니 그게 인격으로 굳어진거니까요.
사람이 더욱 부드러워지고, 맺힌데가 없게 되며 마음은 한없이 평화롭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저 공부이후에 느끼는 효험의 일부일 뿐이에요.
그런게 법인가보다..하면 안됩니다.

그러니 깨달음에 대한 선입견을 모두 버리시고,
오직 스스로 깨달아 자기의 마음안에서 깨달음을 증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모든게 다 밝혀져요.
하지만 그렇다해도, 겉으로는 그저 평범한 한 개인의 삶을 계속 살아갈 뿐입니다.
능력이 되시는 분들은 법을 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자유인으로 살다가는거지요.

합장.
 
2016/11/11 23:03 2016/11/1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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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부는 사실 별 것 없습니다.
도에 계합한 후 계합한 그 자리에 계속 익숙해지는 과정이죠.
도에 계합한다함은 마음이 없어진다는 말과 같은 건데,
마음이 없어진다는 말은 망상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본래 마음이라고 할 것이 없어서,
보면 보는 그 자체로서, 들으면 듣는 그 자체로서...
그저 하나로 경험이 되고 망상을 만들어 망상속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문제는 습의 힘이 강하다보니까,
자꾸 경계에 휘말려들어가 집착을 한다는데에 있어요.
체험이후 공부는 이 습을 조복시키는 과정입니다.
운전면허 따고 나도 운전을 오래한 사람이 더욱 노련하듯이,
법공부도 좀 비슷한 측면이 있어보입니다.
당연히 완벽한 운전자가 없듯이,
법공부의 끝은 없습니다.
습의 조복이라는 문제는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공부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얼마전 아들과 함께 닥터스트레인지라는 영화를 봤는데,
서양사람들이 얼마나 동양의 도를 신비적으로 생각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깨달음을 체험한 이는 엄청난 신비한 능력을 갖게 되더군요...ㅎㅎ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우주의 악과 싸우는 영화인 것 같아요.
물론 오락영화이지만,
결국 서양정신은 선과 악의 분별에서 못벗어나는 구나..라고 느꼈어요.
2016/11/01 10:33 2016/11/0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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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마음공부에 입문하시는 분들의 경우 방향을 잘 잡으셔야 합니다.
사실 첨엔 뭐가 올바른 방향인지, 공부를 어떻게 하는 건지 감을 잡기가 좀 어렵죠.
저도 처음에 마음공부를 해보자고 결심했을 때, 뭘 어찌해야하는지 난감했으며
막연히 머리에 떠올랐던 것은 좌선이나 명상수행 같은 거였어요.
혹은 쿤달리니, 기수련 등등 뭔가를 닦아나가야 되는 거라고 생각했었죠.
근데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보니 상당 부분 오류가 있었습니다.

이 공부는 '현재의 나'가 '깨달은 나'로 바뀌는게 아닙니다.
그런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해요.
사실 첨엔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지금의 나'는 보잘 것 없고 번뇌 투성이이니깐, 공부를 해서 깨닫게 되면
위대하고 멋지고 능력도 있는 대단한 각자가 되는 거겠지...
그 날을 위해서 지금 열심히 수행하자... 뭐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지금의 나!가 이미 더 이상 부족함이 없는 깨달음 자체였습니다.
근데 희한한 것은 '내가 이미 깨달아있구나!'라고 아는 것 만으로는 아무런 내적 변화를 이루질 못해요.
그래서 소위 마음공부라는 것을 하게 되며,
그 방향은 지금 현재 자기의 마음을 깨닫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평상심이 도'라는 말도 있죠.

그럼 어떻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올라올 텐데,
어떠한 방법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물고기가 물 속에서 물을 어떻게 확인하는가?
방법이 없어요.
그냥 깨달아야 해요.
굳이 이야기를 드린다면, 깨닫고자 많이 원해야 됩니다.
가슴으로 간절히 깨달음을 염원해야 해요.
그 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습니다.
물론 선지식의 바른 가르침을 들어야겠죠.

자신의 습관적인 생각의 흐름에서 한번 놓여나면,
바로 그 자리가 본래자리에요.
더 없어요.
그 자리에서 오래오래 익으면 저절로 깨달음이 분명해집니다.

그렇게 하는 겁니다.
동쪽으로 가야하는데 서쪽으로 아무리 열심히 가도 목적지에 도달 못합니다.
하여간, 옛날 마조스님도 마음이 부처라고 했듯이,
깨달음은 내 밖에 따로 있는게 결코 아니에요.
내 마음이 부처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깨닫고 나도 늘 그 사람이에요.
겉으로는 외모나 기능이나 지식이나, 심지어 성격구조 조차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똑같아요.
그러나 자기 스스로는 압니다.
이미 예전의 나는 없고 뭔가 새로운 변화가 찾아온 것을요.
그를 일러 법이라고 합니다.
이후는 그저 법자리에서 인연따라 유유자적하며 사는 거지요.
2016/10/23 09:01 2016/10/2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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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항상 지금 이 순간 명확해야 합니다.
언제 이런 저런 경험이 있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물론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식이지요.
지금 당장 법이 분명하지 않으면 아직 법에 정확히 계합되었다고 할 수없어요.
그리고 자신의 계합체험을 경전이나 선어록에 나와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하려는 식으로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것또한 아직 법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굳이 경전을 인용안해도,
얼마든지 법을 드러내 보일 수 있거든요.

제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보건대,
법에 들어오는 체험을 했어도 상당 시간동안 법에 대한 안목이 없어요.
그저 뭔가 변화가 있다, 달라졌다, 편안하다 등등의 심리적 변화는 있는데,
누가 법이 뭐냐?라고 물으면 뭐라 답해야하나...이런 식으로 되더라구요.
마음 속으로 이게 법인가? 저게 법인가? 이렇게 됩니다.

그러다 선생님 말씀처럼 촛점이 딱 맞으면.
비로소 법에 대한 안목이 확실해집니다.

법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분명 뭐라할 거는 없는데 또 그래도 밝게 살아있거든요.
허공이라 해도 사실은 안맞는데, 물리적 허공은 그저 경계니까요.
공의 진정한 의미를, '아무것도 없다'라기 보다는 '분별되지 않는다'라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라는 선생님 말씀을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망상에서 빠져나와보니 사람들이 정말로 이렇게 심한 망상들을 하고 있구나라고 실감을 하게 됩니다. 지독한 망상병에 걸려있는 겁니다.

합장.
2016/10/20 08:02 2016/10/20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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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관한 모든 말과 글은 전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즉 방편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어떠한 말과 글도 이 자리를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어요.
오직 말과 글을 통하여 문득 자신의 내면이 열리고,
자신의 내면을 통해서 진실을 이해하면 되는 것입니다.




2016/10/16 22:05 2016/10/16 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