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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공포는 '나'라는 생각이 일어난 뒤에야 일어납니다. 
그대는 누구의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누구에게 그 두려움이 있습니까? 
자기와 육체의 동일시가 있습니다. 
이 동일시가 있는 한 공포가 있겠지요.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202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08:38 2016/10/1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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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지각은 하나의 형상, 아마도 몸과 연관되어 있겠지요. 순수한 진아와는 아무것도 연관될 수 없습니다. 진아는 연관되어 있지 않은 순수한 실재이며, 그 빛 안에서 몸, 에고 따위가 빛나는 것입니다. 모든 생각이 가라앉고 나면 순수한 의식이 남게 됩니다. 잠에서 막 깨어나서 세계를 자각하기 전에 그 순수한 '나-나'가 있습니다. 잠들지 말고 생각들에 점유당하지도 말고 그것을 착파하십시요. 그것을 확고히 붙들면 설사 세계가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보는 자는 현상에 영향받지 않고 남게 됩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193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08:38 2016/10/1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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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그대 자신을 몸과 동일시하고, 보는 것을 눈과 동일시하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이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누가 봅니까? 어떻게 봅니까? 단 하나의 의식이 있을 뿐인데, 이것이 '나'라는 생각으로 나타나서 자신을 몸과 동일시하고, 눈을 통해 스스로를 투사하여 주위의 사물들을 보는 것입니다. 그 개인은 생시의 상태에 제한되어 있으면서 뭔가 다른 것을 보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감각 기관의 증거를 확실한 권위가 있는 것으로 여기겠지요. 그러나 그는 결코 보는 자, 보이는 것, 보는 행위가 모두 같은 의식, 즉 '나-나'의 나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관은 진아가 눈으로 볼 수있는 것일 거라는 환상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실 (실재하는 것으로서) 눈으로 볼 수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대는 지금 그 '나'를 어떻게 느낍니까? 그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위해 거울을 앞에 놓고 보아햐 합니까? (존재한다는) 그 자각 자체가 '나'입니다. 그것을 깨달으십시요. 바로 그것이 진리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193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08:37 2016/10/1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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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 자신의 경험상 진아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모르고 자기를 육신과 동일시하면서 불행을 느낍니다. 
이것이 모든 불가사의 중에서도 가장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우리는 진아입니다. 
왜 진아로서 안주하여 불행을 없애버리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자신이 육신이 아니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육신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실은 그는 육신이자 다른 모든 것이기도 합니다. 
육신은 일부분에 불과하지요.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190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08:35 2016/10/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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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없는 잠 속에서는 세계도 없고, 에고도 없고, 불행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진아)는 그대로 있습니다. 
생시의 상태에서는 이런 것들이 다 있는데, 그래도 자기는 있습니다. 
항상 존재하는 진아의 지극한 행복을 깨달으려면 찰나적인 사건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대의 성품은 지복입니다. 
나머지 모든 것이 그 위에 덧씌워지는 그것을 발견하십시요. 
그러면 그대는 순수한 진아로 남게 됩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186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08:34 2016/10/1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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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사라지고 실재가 스스로 빛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실재이면서 실재를 얻으려고 한다는 이보다 더 큰 신비는 없습니다. 우리는 실재만을 경험할 뿐입니다. 
2016/10/16 08:32 2016/10/1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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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들이 존재하려면 관찰자나 사색자로서의 자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 세계들의 실재성은 그 관찰자나 사고자의 실재성과 같은 정도입니다. 
그런 세계들은 그 관찰자나 사고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것들은 자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무지한 사람조차도 대상들을 볼 때는 자기를 볼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미혹되어 자기를 그 대상, 즉 육체나 감각 기관 등과 동일시하고, 세계안에서 놉니다. 
주체와 대상-모두가 진아 안에 합일됩니다. 
보는 자도 없고 보이는 대상도 없습니다.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은 바로 진아입니다. 
다수의 자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진아일 뿐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155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08:31 2016/10/1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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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 
잠에서 깨어난 사람은 그 자신이 깊은 잠에 들어있었지만 자각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잠자던 사람이 지금의 사람과 다르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오직 하나의 자기가 있을 뿐입니다. 
그 자기는 항상 자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불변입니다. 
진아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질 : 아스트랄체가 무엇입니까? 

마 : 그대는 꿈 속에서 하나의 몸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침대 위에 누워있는 그 몸과 다르지 않습니까? 

질 : 죽은 뒤에도 우리가 존재합니까? 아스트랄체는 육신의 죽음 뒤에도 살아남습니까? 

마 : 꿈속에서도 그대가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을 한 뒤에 깨어나듯이, 육신의 죽음 뒤에도 다른 몸을 얻게 됩니다. 

질 : 죽고 난 뒤에도 아스트랄체는 40년 동안 살아 있다고 합니다. 

마 : 현재의 몸 안에서 그대는 꿈의 몸이 아스트랄체라고 말합니다. 그 꿈의 몸 안에서도 그렇게 말했습니까? 지금 아스트랄체인 것이 꿈 속에서는 실재하듯이 보이겠지만, 현재의 몸 자체도 꿈의 관점에서 보면 아스트랄체입니다. 이 아스트랄체와 저 아스트랄체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 둘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질 : 실재성의 차이가 있습니다. 

마 : 꿈의 몸은 지금 실재하지 않고 이 몸은 꿈 속에서 실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실재성의 정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깊은 잠 속에서는 몸에 대한 경험이 없습니다. 항상 오직 하나가 있을 뿐인데, 그것이 진아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153-154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08:30 2016/10/1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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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기 안에 있습니다. 
세계가 있고 그 안에 하나의 육신이 있으며 자신이 그 육신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만일 진리를 알게 되면 우주와 그 너머의 것이 자기 안에 있을 뿐임을 발견할 것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127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08:29 2016/10/1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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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존재하는 의식을 깨달았을 때에만 그것이 영구적입니다. 의식은 실로 항상 우리와 함께 합니다. 누구나 '내가 있다'는 것을 알지요. 누구도 자기자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깊은 잠이 든 사람은 의식이 없지만 깨어 있을 때에는 의식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똑같은 사람입니다. 잠자던 사람과 지금 깨어 있는 사람 사이에 바뀐 것은 없습니다. 깊은 잠 속에서는 자신의 몸을 자각하지 못했고, 따라서 몸-의식이 없었습니다. 생시의 상태에서는 자신의 몸을 자각하므로 몸-의식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 차이는 몸-의식이 일어났다는데 있지, 진정한 의식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습니다. 몸과 몸-의식은 함께 일어나고 함께 가라앉습니다. 결국 깊은 잠 속에서는 아무 한계가 없으나 깨어 있을 때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한계가 바로 속박입니다. '몸이 나다'라는 것이 착각입니다. 이 거짓된 '나'라는 느낌이 사라져야 합니다. 진정한 '나'는 항상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새로 나타나지도 않고 다시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영원히 지속되어야 합니다. 새로 나타나는 것은 결국 사라질 것입니다. 깊은 잠과 생시를 비교해 보십시요. 생시에는 몸이 나타나지만 잠들었을 때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몸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의식은 몸보다 먼저 있었고, 몸이 사라진 뒤에도 남을 것입니다. 사실 '내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몸이다'라는 그릇된 앎이 모든 불행의 원인입니다. 이 그릇된 앎이 사라져야 합니다.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은 새로운 어떤 것을 얻는 것도 아니고, 새로 생겨난 능력도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위장물을 제거해 버리는 것일 뿐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와의 대담 / 115쪽 / 라마나 마하리쉬 / 탐구사>
2016/10/16 08:28 2016/10/16 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