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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이 영원하고 무소부재한 브라흐만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신을 육체와 잘못 동일시하면서 고통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에게는 현상계가 실재하지 않으며, 환상일 뿐이라고 상기시켜 주어야한다. 종이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종이 위에 씌어진 글씨를 볼 뿐, 아무도 종이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글씨가 씌어 있건, 씌어 있지 않건, 종이는 존재한다. 그러나 글씨를 실체로 보는 사람에게는 글씨는 종이에 의존하고 있기때문에 실체가 아니고 환상이라고 말해 줘야 한다. 현명한 사람은 종이와 글씨, 즉 브라흐만과 우주를 하나로 본다.

 

<나는 누구인가 / 217쪽 / 라마나마하리쉬>

2016/10/11 11:19 2016/10/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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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그 두려움이 그대를 사로잡는 때는 언제인가? 그대가 자신의 육체를 보지 못할때, 즉, 깊이 잠든 상태에서 그 두려움을 느끼는가? 그 두려움이 그대를 사로잡는 때는 그대가 완전히 깨어있으면서 그대의 육체를 포함한 이 현상계를 지각하고 있을 때뿐이다. 만약 그대가 깊이 잠든 때처럼 이 현상계를 지각하지 못하고 순수한 진아로서 남아있다면 어떠한 두려움도 그대를 건드릴 수 없다.

 

그대는 무엇을 잃을까봐서 두려워하는가? 그것은 무언인가? 그것을 추적해보면 그대는 그것이 육체가 아니라 육체 안에서 작용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만약 각성상태가 계속 유지되기만 한다면, 자신의 병든 육체와 거기에 따르는 여러가지 문제점, 또는 불편한 점들을 기꺼이 포기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결코 육체가 아니라 각성상태이며  의식이다.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존재는 곧 각성상태를 의미하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진아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순수한 각성 상태를 얻지는 못하는가? 그리하여 왜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가?

 

< 나는 누구인가 / 라마나마하리쉬 / 204쪽>

2016/10/11 11:13 2016/10/1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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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생각>의 탄생이 곧 한 개인의 탄생이며 <나라는 생각>의 죽음이 그 개인의 죽음이다.

마치 불에서 불꽃이 일어나듯 절대적인 진아로부터 불꽃이 나타나는데  그것을 에고라고 한다.

형태가 없는 이 유령같은 에고는 형태와 연관을 맺음으로써 존재하고, 형태와 연관을 맺음으로 지속되며, 연관맺은 형태들로 인하여 점점 커진다. 또, 한 형태와의 연관이 끊어지면 다른 형태와 다시 연관을 맺는데, 찾으려고 하면 도망가버린다.


<
나는 누구인가 / 108, 112쪽 / 라마나마하리쉬 / 이호준 옮김 / 청하>

2016/10/11 11:08 2016/10/1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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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마하리쉬)는 개체성을 마음과 같은 것으로 보고 마음을 <나라는 생각>과 같은 것으로 보았기때문에, 그에 의한다면 개체성의 느낌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마음과 <나라는 생각>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깨달은 다음에는 생각하는 자도 행위자도 없으며 개체성에 대한 인식도 없다고 강조했던 이유가 이 때문이다.

 

< 나는 누구인가 / 106-107쪽 / 라마나마하리쉬 / 이호준 옮김 / 청하>

2016/10/11 11:05 2016/10/1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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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는 노래도 하고 말도 한다. 
그러나 그 안을 열어보면 그 안에는 아무도 없다. 
마찬가지로 나의 존재란 허공과 같다. 
이 육체를 통해서 라디오처럼 말을 하지만 내부에는 아무런 행위자가 없다. 

< 나는 누구인가 / 97쪽 / 라마나 마하리쉬> 
2016/10/11 11:02 2016/10/1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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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이미 그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진아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그것들은 그대의 안에 있다. 
마찬가지로 그대가 그대 주위에서 바라보는 모든 것은 그대 안에 있다. 

< 나는 누구인가 / 91쪽 / 라마나마하리쉬>
 
2016/10/11 11:01 2016/10/1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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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상태와 깨어있는 상태 간에는 연속성이 있다. 그 연속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쨌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두 가지 상태 간에는 차이점이 있다.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육체를 위시한 여러 사물들이 나타나지만 잠든 상태에서는 사라진다는 점이다. 

잠들어 있을 때는 육체나 이 세상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그대가 <저는 잠들어 있을 때는 아무것도 모릅니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잠자는 동안에도 그대가 존재해야 한다.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사람은 깨어있는 사람이며, 자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결국 지금 진아를 육체와 동일시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 자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세가지 상태 모두에서 연속되는 것은 그대의 존재 뿐이며, 특정한 인식이나 대상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그대의 존재 자체, 즉 실체는 영원하지만 육체와 이 세상은 그렇지 않다. 그것들은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실재-의식>의 스크린 위를 스쳐 지나가는 화면일 뿐이다. 

< 나는 누구인가 / 84쪽 / 라마나마하리쉬>
2016/10/11 10:34 2016/10/1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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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을 때에는 자신의 육체에 대한 의식이 있으나, 깊이 잠들었을 때에는 이 육체에 대한 의식이 없으므로 차이점은 육체에 대한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데에 있을 뿐, 본래의 의식 자체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육체와 육체에 대한 의식은 같이 나타났다가는 같이 사라진다. 깊은 잠을 자는 동안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으나 깨어있을 때에는 제약이 있으며 이러한 제약이 바로 구속이다. 문제는 바로 <육체가 곧 나>라는 느낌이며 이 그릇된 느낌이 사라져야 한다. 그것은 새롭게 나타나지도 않으며 다시 사라지지도 않는다. 깊이 잠든때와 깨어있을 때를 비교해보라. 전자에서는 육체가 사라졌다가 후자에서 다시 나타난다. 따라서 육체는 실체가 아니다. <육체가 곧 나>라는 그릇된 생각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며 이 그릇된 생각이 사라지면 깨달음이 드러난다. 궁극적인 진리란 지극히 단순하다. 그것은 원래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며 이 이상 다른 말은 필요하지 않다. 

< 나는 누구인가 /라마나마하리쉬 / 82쪽>
2016/10/11 10:31 2016/10/1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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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근본적인 착각은 진아가 육체와 마음에 제한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자신은 특정한 육체를 가진 특정한 개체라는 이러한 생각을 벗어나기만 하면, 
모든 그릇된 생각들은 한꺼번에 무너져 버리고,  
대신 진아에 대한 의식적이면서 영원한 깨달음이 나타난다. 

진아란 추구해야할 목표가 아니라 <진아 아닌 것>에 대한 제한적인 생각들이 떨어져 나가기만 하면 스스로 드러나는 각성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 나는 누구인가 / 라마나마하리쉬 / 78쪽>
2016/10/11 10:29 2016/10/1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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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생각을 초월한 상태가 침묵이며 존재 그 자체가 침묵이다. 어떻게 언어로서 침묵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나(에고)>라는 생각이 조금도 일어나지 않고 오직 진아만이 존재하는 상태가 침묵이라고 성인들은 말씀하셨다. 침묵만이 진실하고 완전한 앎이며 그외의 모든 앎은 보잘것없고 하찮은 앎에 불과하다. 기억하라, 현상계의 수많은 차별상들은 진실되지 않다. 그것들은 진아의 표면에 나타난 허상에 불과하다.

진아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육체는 결코 실재하지 않으며, 착각의 힘에 의해 왜곡된 마음의 외향적인 측면에서 볼 때만 육체가 실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깨달은 사람은 자신이 곧 진아라는 사실을 알며 진아외에는 육체나 그 밖의 아무것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이와 같은 사람에게 육체가 있고 없음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우물을 파면 구멍이 생기는데 그 구멍 속의 공간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곳에서 공간을 채우고 있던 흙을 옮겼을 뿐이다. 그 공간은 그때 거기에 있었으며 지금도 역시 그 곳에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들의 내면에 쌓여있는 오래되고 낡은 축적물을 밖으로 던져 내기만 하면 된다. 그것들이 모두 떨어져 나갔을 때, 진아만이 홀로 빛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 71-72쪽/ 라마나마하리쉬>
2016/10/11 10:23 2016/10/11 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