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관심있는 분들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입니다. 무심선원에서 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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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근본적인 착각은 진아가 육체와 마음에 제한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자신은 특정한 육체를 가진 특정한 개체라는 이러한 생각을 벗어나기만 하면, 
모든 그릇된 생각들은 한꺼번에 무너져 버리고,  
대신 진아에 대한 의식적이면서 영원한 깨달음이 나타난다. 

진아란 추구해야할 목표가 아니라 <진아 아닌 것>에 대한 제한적인 생각들이 떨어져 나가기만 하면 스스로 드러나는 각성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 나는 누구인가 / 라마나마하리쉬 / 78쪽>
2016/10/11 10:29 2016/10/1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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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생각을 초월한 상태가 침묵이며 존재 그 자체가 침묵이다. 어떻게 언어로서 침묵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나(에고)>라는 생각이 조금도 일어나지 않고 오직 진아만이 존재하는 상태가 침묵이라고 성인들은 말씀하셨다. 침묵만이 진실하고 완전한 앎이며 그외의 모든 앎은 보잘것없고 하찮은 앎에 불과하다. 기억하라, 현상계의 수많은 차별상들은 진실되지 않다. 그것들은 진아의 표면에 나타난 허상에 불과하다.

진아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육체는 결코 실재하지 않으며, 착각의 힘에 의해 왜곡된 마음의 외향적인 측면에서 볼 때만 육체가 실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깨달은 사람은 자신이 곧 진아라는 사실을 알며 진아외에는 육체나 그 밖의 아무것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이와 같은 사람에게 육체가 있고 없음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우물을 파면 구멍이 생기는데 그 구멍 속의 공간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곳에서 공간을 채우고 있던 흙을 옮겼을 뿐이다. 그 공간은 그때 거기에 있었으며 지금도 역시 그 곳에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들의 내면에 쌓여있는 오래되고 낡은 축적물을 밖으로 던져 내기만 하면 된다. 그것들이 모두 떨어져 나갔을 때, 진아만이 홀로 빛날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 71-72쪽/ 라마나마하리쉬>
2016/10/11 10:23 2016/10/1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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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는 우리에게 나타난 일종의 병이다. 

그 근본적인 병에 다른 병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에게 오히려 좋은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어디로 가겠으며 어떻게 가겠느냐?

가고오는 것은 육체에게나 있는 것이지 어떻게 진아가 그럴 수 있겠느냐?

소가 자기의 뿔에 밧줄이 걸려있는지 아닌지 잘 모르고,

술취한 사람이 자기 몸 위에 옷이 걸쳐 있는지 아닌지 잘 모르듯이,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육체가 아직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 나는 누구인가 / 59쪽 / 라마나마하리쉬>

2016/10/11 10:19 2016/10/1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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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계속 그 <나>, 즉, <진아>는 강력한 힘으로 스스로에게 촛점을 맞추었고 죽음에 대한 공포는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또 이 진아에의 몰입상태는 단 한 순간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다른 생각들은 악보의 음표들처럼 나타났다가는 사라져갔지만 이 <나>는 마치 악보의 오선처럼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육체가 말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나는 여전히 이 <나>에 집중되어 있었다.  

 

< 나는 누구인가 / 31쪽 / 라마나마하라쉬 / 이호준 옮김 / 청하>

2016/10/11 10:15 2016/10/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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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공포는 나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일렀다. <자, 죽음이 왔다.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 육체는 죽을 것이다.> 그리고는 나는 바로 죽음의 장면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나는 실제감을 느끼기 위해서 내가 시체가 된 것처럼 생각하면서 팔다리에 경직현상이 나타난 듯이 팔다리를 쭉 펴서 뻣뻣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숨을 죽이고 입술을 꼭 다물고서 아무 소리도 입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자, 됐다.> 나는 혼자 말했다. <이 육체는 죽었다. 이 육체는 화장터로 옮겨져 장작더미 위에서 재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이 육체가 죽는다고 내가 죽는 것일까? 이 육체가 과연 나일까?> 육체는 고요히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때, 육체와는 별개의 강력한 내 존재의 힘을 느꼈으며 내면에서 울리는 <나>의 소리를 느꼈다. <나는 이 육체를 초월한 영이다. 죽어도 육체를 초월한 이 영은 죽음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나는 바로 이 불멸의 영이다.>

 

< 나는 누구인가 / 30-31쪽 / 라마나마하라쉬 / 이호준 옮김 / 청하>

2016/10/11 10:13 2016/10/1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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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깨어있는 상태와 꿈꾸는 상태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 

 

답변 : 깨어있는 상태는 길고 꿈꾸는 상태는 짧다. 그것말고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깨어있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이 그 상태에서는 실재하는 것 처럼 보이듯이 꿈꾸는 상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꿈꾸는 상태에서  마음은 다른 체(body)를 가진다. 또 어느 상태에서나 생각과 이름과 형상들이 동시에 나타난다.

 

- 나는 누구인가 / 22쪽 / 라마나마하라쉬 / 이호준 옮김 / 청하 -

 

 

2016/10/11 10:10 2016/10/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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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세가지 상태가 없다고 그대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깊이 잠들어있었다> <나는 지금 깨어있다>라는 말들을 함에 있어서 그대는 그 세 가지 상태 모두에서 <그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며, 그렇게 볼 때 <그대>는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대는 지금 깨어있는 상태에 있으며, 꿈 꾸는 상태에서는 지금의 이 상태가 가리워지고, 깊은 잠을 잘 때는 꿈 꾸는 상태가 사라진다. 그러나 그대는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존재한다. 세가지 상태는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그대는 항상 존재한다. 

 

이것은 마치 영화와 같다.

스크린은 항상 존재하지만 여러가지 영화 화면들은 스크린 위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다. 스크린은 항상 존재하지만 여러가지 영화 화면들은 스크린 위에 나타났다가는 사라져버린다. 스크린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다. 스크린은 스크린으로서만 남는다. 마찬가지로 그대는 그 세가지 상태 모두에서 그대 자신의 진아로서 남는다. 그대가 이 사실을 이해한다면, 스크린 위에 나타났던 영화 화면들이 시간과 더불어 사라져버리듯이, 그 세가지 상태들은 그대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스크린 위애는 때로 수많은 파도가 출렁이는 거대한 바다가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또 어떤 때에는 큰 불이 일어났다가 사라지지만, 스크린은 어느 경우에나 그냥 거기에 남아있다. 스크린은 결코 물에 젖거나 불에 타지 않는다. 어떤 영화 화면도 스크린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깨어있는 동안, 꿈꾸는 동안, 잠자는 동안에 그대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며 그대는 항상 그대 자신의 진아로서 남아있다.

 

< 나는 누구인가 / 73쪽 / 라마나마하라쉬 / 이호준 옮김 / 청하>

2016/10/11 10:04 2016/10/1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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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기쁨이 올라옵니다.

'나'의 한계가 사라지고 툭 터져서 눈에 보이는 경계 하나하나에서 

시원하게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에는 어김없이 그런 느낌이 올라와요.

절대적 안정감이랄까, 그런게 있어요.

밝게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단지 느낌을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이 세상 그대로 불세계네요.

2016/10/08 20:34 2016/10/0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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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목보리란 말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모두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시는 분들도 계실테지만,

눈에 보이는 온갖 사물들, 들리는 소리, 생각, 느낌 등등

모두 깨달음 아닌게 없어요.

다른 말로 하면 모두 다 '나' 아님이 없다는 거지요.

 

이 작은 육신만 내가 아니라,

이 모든 삼라만상이 '나'아님이 없어요.

 

삼라만상(색)이 그대로 공이라고 하죠,

왜 그렇게 말하는지 공부를 하다보면 실감을 하게 됩니다. 

2016/10/03 10:28 2016/10/0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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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에 진정으로 목이 마른 공부인이라면, 자칫 깨달음에 연관되어있는 고정관념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그 고정관념의 핵심에는 깨달음이란 아무나 되는게 아니라 몇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대단한 성자들만이 이룰수 있는 아주 심오하고 고귀한 정신상태이다..라는 것이다. 
나도 젊은 시절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당연히 깨달음 공부는 엄두도 못내고, 그러나 그 길만이 유일한 희망이었으므로 깨닫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좀 마음이 좋아지지는 않겠는가 하는 타협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었다.

이는 아마도 마음이 순수하지 못한, 뭔가 권력을 지향하는 이상한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불순한 생각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만일 깨달음이라는 것이 위대한 극소수의 스타들만의 전유물이라면 왜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목을 매겠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깨달음은 모든 사람의 본래적 존재이다.
어떤 노력을 통해서 마침내 이루어내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본래가 깨달음의 상태에 있다는 말이다.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들이라기보다 오히려 진지하고 성실한 사람들이다.
이미 그것인 우리의 존재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비밀을 풀겠다고 마음을 먹으려면 마음이 순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세간적 욕망에 빠져서 자신의 현실적 이득에 온 마음이 가있다면 거기에 어디 깨달음을 위한 마음의 여지가 있겠나.
마음이 가난해야, 세간적 욕심이 적어야, 비로소 자기 스스로의 존재에 의문을 갖게되고,
비로소 석가모니 부처님이 발견하신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2016/10/01 18:09 2016/10/01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