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선원에서 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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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체험이라고 하면 그 체험의 내용이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농촌체험학습 그러면 도시의 학생들이 농촌이라고 하는 특별한 상황을 경험하는 것을 말하지요.
그런데 법공부에 있어서의 견성체험이라고 했을 때에는, 그와는 달리 체험내용이 없습니다.
초심자 분들의 경우 이 부분에서 많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본래 범부중생은 없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부처밖에는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범부중생으로 여기고, 부처를 찾는 공부를 하게 되지요.
자기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중생이거든요. 
도저히 부처라고 할 만해 보이지 않습니다.
부처정도 되려면 대충 이러저러 해야하지 않나..하는 막연한 상상의 모습이 있거든요.
그를 일러 법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너 자신이 부처이다, 본래 깨달아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혼란스러워져요.
"무슨 말이지? "하면서요...

부처란 어떤 대단한 존재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저 본래의 자기를 깨달아 하나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견성전에는 체험이라는 말을 하지만,
견성후에는 체험자체가 본래 없었음을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본래가 부처였음을 믿어의심치 않게 되는 거지요.

실제로 체험을 하게되면 이러함을 확실하게 체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이상 추구함이 일어나지 않아요.
의심이 남아있다함은 아직 법에 완전히 계합이 안된 겁니다.
법에 완전히 계합이 되면 결코 의심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여전희 습의 문제는 남아있습니다.
법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습의 힘이 점점 약해지는게 체험 이후의 공부의 과정이라 할 수있겠습니다.

습의 힘이란 본래 허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 같아요.
매일매일의 일상생활 자체가 좋은 공부재료가 됩니다.
어떤 경계가 왔을 때 전에 비해서 덜 끄달리게 되고 덜 힘들게 된다면, 공부가 아주 잘 익어간다고 할 수있을 것 같습니다.
2017/04/02 21:36 2017/04/02 21:36